인사동 꿀타래가 궁중음식?
인사동 꿀타래가 궁중음식?
  • 공지현 기자
  • 승인 2019.03.11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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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현 기자
공지현 기자

인사동의 명물 중 하나인 꿀타래는 임금님께 진상하던 궁중다과로 알려져 있다. 꿀타래는 꿀과 맥아당(엿당)으로 만든 반죽을 14번 늘이고 늘여서 만 육천 가닥 이상으로 만들어 그 안에 견과류로 만든 소를 넣어 만드는 디저트이다. 꿀타래가 주로 판매되는 곳은 인사동, 명동과 같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는 관광명소들인데, 50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 전통 궁중다과라는 말로 눈길을 끄는 마케팅에 소비대상의 대부분이 관광객들이다. 그런데 과연 이 꿀타래는 궁중다과가 맞는 것 일까?

처음 꿀타래가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중후반이었다. 처음 꿀타래를 인사동에서 판매할 때만 해도 상품명은 꿀타래가 아니라 '용수염'이기도 했고, 1999년 11월 19일자에 '중국의 호텔에서 시연하는 것을 보고 들여왔다.' 라는 동아일보의 기사가 꿀타래가 전통한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그렇다면 꿀타래는 어디서 흘러들어온 것일까?

그 기원은 터키의 ‘피스마니에(PISMANIYE)’이다. 설탕은 4 세기 이후 생산되기 시작해 중국과, 아랍, 유럽으로 전파되었고, 15세기경 아랍에서 유럽으로 설탕을 이용한 후식들이 개발 및 파급해 나갔다. 이란-페르시아 지역에 사는 누군가가 피스마니에를 처음 만들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 신기함과 달콤함에 너무 놀라서 자신들의 느낌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1430년도 이후 시집이나 문학작품에서 피스마니에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피스마니에는 ​처음에는 '이란 솜사탕‘으로 알려지다가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아랍 지역을 정복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오스만 제국 음식 문화에 편입되어 터키의 디저트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피스마니에가 중국으로 건너가면서 지금의 꿀타래와 더 유사한 형태의 ‘용수당’이 되었고, 중국의 호텔에서 용수당을 만드는 것을 본 꿀타래의 개발자가 ‘용수염’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들여오게 되었다.

그렇다면 꿀타래는 왜 궁중다과로 알려진 것 일까?

처음 들어왔을 때는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라고 명시되었지만, 점차 이야기에 살이 붙기 시작해 500년 전통의 한국 왕실 간식으로 둔갑해버렸다. 주 소비층이 외국인들이라는 걸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전통한과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외국인에게 심어주는 셈이다. 방송에서도 왜곡된 사실이 그대로 소개된 적 있다. 2006년 3월 28일에 방영된 상상플러스인데 노현정 아나운서가 꿀타래를 임금님의 후식으로 소개하였고, 자막 또한 임금의 후식 꿀타래/꿀로 16,000여개의 실로 만든 궁중 다과/임금이나 외국 사신이 먹었던 고급 다과/혹시 명나라에서 조선 사신에게 꿀타래를 주지 않았을까 등으로 보도하였다. 워낙 많은 시청자들이 있는 유명 프로그램이었기에 많은 시청자들이 왜곡 된 정보를 받아들이는 큰 계기가 되었다. 요즘은 정보가 워낙 빨리 퍼지니 꿀타래가 중국에서 넘어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있으나 어떤 경로로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에 대해선 제대로 된 정보가 없어서, 조선 시대 쯤에 궁중에 전래된 것 정도로 오해하기가 쉽다.

한국인들의 전통과 역사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거기에 상인들의 상술이 더해져 이런 오해가 빚어지고 있다. 비슷한 예로 음식인문학 주영하 교수의 책 내용 중 전주비빔밥의 기원에 대해 주영하 교수가 학술 연구를 의뢰받았을 때, 비빔밥의 기원이 시장에서 상인들이 간단히 먹던 식사일거라고 발표하자, 지역 상인들이 '최소한 임금님이 드셨다곤 해야 폼이 나지 않겠느냐' 라고 항의했다는 글이 있다.

꿀타래와 전부비빔밥 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차츰차츰 왜곡 된 것들이 이미 실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 후손에게 우리의 역사와 전통, 문화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주려면 우리가 먼저 관심을 갖고, 직시하여 올바른 정보를 지켜나가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