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범죄' 대책만 화려…직원 1명이 100명 관리
'정신질환 범죄' 대책만 화려…직원 1명이 100명 관리
  • 김경수 기자
  • 승인 2019.04.22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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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원법 통과, 내년부터 정신치료 사후관리 강화
"인력·예산 국제기준 안 맞추면 후소대책 무소용"
경남 진주시 가좌동 한 아파트에서 이달 17일 발생한 방화·묻지마 살인 사건 피의자인 40대 남성 안모(43)씨가 19일 진주경찰서에서 나오고 있다.
경남 진주시 가좌동 한 아파트에서 이달 17일 발생한 방화·묻지마 살인 사건 피의자인 40대 남성 안모(43)씨가 19일 진주경찰서에서 나오고 있다.

 

'고(故) 임세원 교수 피습에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진주 방화 살해사건까지…'

정신질환 병력을 지닌 이들의 범죄가 잇따르면서 정부가 정신질환 관리체계 개선대책 발표에 분주하지만 정작 정책을 집행할 '손발'이 없는 실정이다. 정신질환 관련 인력과 예산이 선진국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31일 임세원 교수 사건 후속대책으로 △초기 집중치료 지원체계 구축 △적정진료 통한 일상복귀 지원 △자·타해 위험 대응역량 강화 △인프라 확대 등 각종 정신질환 치료·관리체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7일 진주 방화살해 사건 대책으로는 보건당국과 경찰청 등 관계부처 간 협력체계와 공조를 강화하는 조치가 발표됐다.

일선 경찰을 교육해 정신질환자의 행동방식을 잘 인식하게 하고, 보건당국 관계자가 경찰·소방과 함께 출동해 정신질환자의 돌발행동을 초기에 신속·정확히 대응케 하겠다는 것이다.

즉 정신질환자가 치료를 마친 뒤에도 타인에게 위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다면 사후관리를 강화하고, 정신질환 병력을 가진 이가 돌출행동을 하면 현장대응을 더욱 확실히 해 최근과 같은 사건들을 막겠다는 것이다.

국제사회 주요국으로 발돋움한 우리나라가 자칫 중대한 인권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강압적인 환자 격리 정책으로 방향을 틀 수는 없는 현실이다. 지금처럼 현 제도의 맹점을 점진적으로 보완해 나가는 쪽이 맞다는 것은 대부분의 전문가들도 동의하는 바다.

하지만 아무리 제도가 잘 갖춰져도 인력과 예산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국제적 수준에 맞추려면 정신건강 예산을 적어도 3배 이상 높이고 사후관리 인력 역시 3~4배 늘려야 한다. 

우리나라의 보건예산 대비 정신보건예산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 5.05%의 3분의 1수준이다. 올해 복지부 전체 예산 72조5148억원 중 보건예산은 1.5%(11조1499억원), 이 가운데 정신보건 예산은 0.23%(1713억원)를 차지한다.

여기에 정신질환 고위험군을 관리하는 시군구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전문 인력이 아예 없거나 태부족인 실정이다.

작년 기준 지역 정신건강보건센터 1곳당 평균 직원 수는 9.7명(전국 243개소 개설·2365명), 이 중 정신질환자와 접촉하는 사례관리 인력은 4명 내외다. 사례관리요원 1명이 약 60~100명의 등록 정신질환자를 돌보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1명이 25명 정도를 관리하는 것과 비교하면 약 3배의 차이가 나며 전반적인 센터인력 부족 현상까지 감안하면 실질적인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정부는 올해 전문인력 290명을 추가 확충하고 2022년까지 1075명을 늘려 1인당 담당환자 수를 29명으로 낮출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이마저 현장의 어려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족한 대책이라는 비판이 많다.

결국 정신질환 치료·관리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게 과도하게 지우는 보건정책 패러다임부터 고쳐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앞서 정부는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에 2022년까지 30조원을 투입할 계획을 밝혔지만 대부분 신체질환에 집중하고 있으며 정신건강 부문 예산은 극히 적다.

지난 5일에는 '임세원 법'으로 불리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이 실현되기 위해서도 예산과 인력은 필수다. 이 법은 정신과 환자의 사후 관리를 강화하는 내용으로 본격 시행까지 1년이 남았다.

지금껏 정신과 환자는 퇴원 후 환자 스스로가 치료의 필요성을 판단하기 어렵고 보호자 통제도 벗어나기 쉬워 지속적인 치료가 안 되는 허점이 있었다.

새 법이 시행되면 정신건강증진시설 장은 퇴원환자에 대한 각종 정보와 자료를 안내하고 갖출 의무가 생긴다. 또 자타해 위험성이 있는데도 퇴원한 환자는 의료기관장이 환자나 보호자 동의를 받아 퇴원 사실을 관할 정신건강복지센터장에게 통보하도록 하고, 지자체장은 필요한 경우 전문의 진단이나 심사를 거쳐 외래치료지원을 연장할 수 있다.

이해국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일본은 1960년대 조현병 환자의 미국 대사 피습사건을 계기로 환자 격리 주장이 나왔지만 정신건강센터를 만들고 공동체 안에서 지원한 결과 도쿄 주민 5%가 정신질환자로 등록했다"면서 "정신질환을 앓는 이가 자발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전향적 정책이 필요하다. 정신질환자를 수면 위로 올려야 위험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