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수십 년 걸쳐 점진적으로: 흡수통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21세기 열린 통일로
통일은 수십 년 걸쳐 점진적으로: 흡수통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21세기 열린 통일로
  • 연합매일신문
  • 승인 2021.01.05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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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

통일이 언제쯤 되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오래 전부터 많이 받아왔다. ≪씨알의 소리≫ 2021년 신년호 특집 편집자가 나에게 건넨 주제도 “통일한국의 날은 언제인가”였다. 질문을 받으면 즉각 되묻는다. 통일이 어떠한 상태를 뜻하느냐고.

통일 (統一)은 말 그대로 나누어진 것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다. 남북은 나누어진 게 많다. 크게 세 가지만 꼽는다. 1945년 8월 38선으로 국토가 쪼개졌다. 1948년 8-9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이념과 체제가 갈라졌다. 1950-53년 한국전쟁으로 민족이 분열됐다. 이렇게 나누어진 세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만 합쳐도 통일일까, 모두 합쳐야 통일일까.

나누어진 셋 중 하나만 합쳐도 통일이라면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남북 민족이 원한과 적대감을 버리고 화해하며 교류와 협력을 활발하게 하면 민족통일 아닌가. 금세 이룰 수 있다. 세 가지 모두 합쳐져야 통일이라면 몹시 어렵다. 적어도 수십 년 걸릴 것이다. 특히 이념 및 체제와 관련해 남북 어느 쪽도 양보하기 원치 않기 때문이다. 남쪽은 체제경쟁에서 이겼다며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쪽은 ‘우리식 사회주의’가 필승불패라며 남쪽 체제로 합치는 것을 결사코 거부한다. 어느 한쪽이 스스로 무너지거나 전쟁을 벌이지 않는 한 체제 통일은 거의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러기에 북한은 서로 다른 두 체제가 오랫동안 공존하는 형태의 통일방안을 1960년부터 다듬어왔고, 남한은 두 체제를 수십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합치는 통일정책을 1989년부터 세워놓았다. 이러한 남북 정부의 공식 통일정책은 이 글이 발표될 2021년 1월까지 전혀 변함없을 것이다. “통일이 언제쯤 될까” 또는 “통일한국의 날은 언제인가”라는 물음을 통해 난 적어도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첫째, 많은 사람들이 남북 정부의 통일정책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합의사항의 가장 중요한 내용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고. 남쪽 통일정책의 중간 단계인 국가연합과 북쪽 통일정책의 낮은 단계 연방제 사이의 공통점을 바탕으로 통일을 지향하자는 합의 말이다. 통일은 상대가 있기에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없다. 무력통일을 이루는 게 아니라면. 남쪽이든 북쪽이든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통일방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양쪽 통일정책의 공통점이 상대방 체제를 인정하고 공존하며 서서히 하나가 되자는 것이다. 남북이 각각 오랫동안 유지해온 서로 다른 체제를 급격하게 또는 단기간에 하나로 합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에 통일을 점진적으로 이루자고 최고지도자들이 약속했다는 말이다. 6.15 남북정상회담을 잊지 않고 기념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합의사항을 잘 모르기에 통일이 언제쯤 되겠느냐는 궁금증을 갖는 게 아닐까.

둘째, ‘통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북쪽 체제 붕괴에 따른 남쪽의 흡수통일을 머릿속에 그리는 듯하다. ‘흡수통일’이란 말을 내세우지는 않지만, 통일을 북한의 이념과 체제가 사라지거나 무너지고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편입되거나 흡수되는 상태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이랄까. 통일이 이루어지면 엄청난 사회혼란이 일어나고 막대한 통일경비가 들어갈 것이라고 우려하는 배경일 것이다. 1990년 독일 통일을 떠올리면서. 1994년 김일성 사망과 1995년부터 널리 알려진 북한 식량난 그리고 199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탈북자 행렬에 따라 남쪽에 급속도로 확산된 ‘북한 붕괴론’이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한다. 2008-13년 이명박 정부 때 “통일은 도둑같이 올 것”이라며 통일기금을 마련한다고 ‘통일세’나 ‘통일항아리’를 공론화한 것도 흡수통일 세뇌에 힘을 실었을 것이다. 북한 체제가 머지않아 무너지리라는 예상이나 붕괴되면 좋겠다는 기대를 바탕으로 통일이 언제쯤 될까 하는 질문이 제기되는 게 아니겠는가. 나는 1990년대 후반부터 북한 붕괴는 가능성도 낮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주장해왔는데 앞으로 더욱 더 그럴 것 같다.

북한이 무너지지 않고, 남북이 전쟁으로 통일하지 않으며, 양쪽 정부의 공식 통일정책 및 합의에 따라 점진적으로 통일이 이루어지려면 적어도 수십 년 걸리는 게 당연하다. 평화공존을 통한 점진적 통일엔 엄청난 사회혼란이 일어날 이유도 없고, 막대한 통일경비가 들어갈 까닭도 없다. 남북 경제력 차이 때문에 통일이 어려울 것이라는 쓸데없는 걱정도 필요 없다.

이 때문에 ‘통일’이라는 말 자체가 통일의 큰 걸림돌이라는 주장이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왔다. 한자 표기를 하나로 합친다는 ‘統一’보다 하나로 통한다는 ‘通一’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바람직한 표기다. 먼저 하나로 통하면서 나중에 하나로 합치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일을 나누어진 모든 게 하나로 ‘합쳐진 상태’로 못 박지 말고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까지 포함하는 게 어떨까. 통일이 이루어지는 시기보다 과정을 더 중시하면서.

나는 오래 전부터 ‘21세기형 통일’을 주장해왔다. 2020년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민족과 국가가 중시되고 있지만, 20세기 말부터 전개되어온 세계화와 지방화가 코로나 이후엔 멈추지 않고 가속화할 것이다. 세계화는 국경이 낮아지거나 열리는 것을 뜻하고, 지방화는 중앙에 집중된 권력이 지방으로 분산되는 것을 의미한다. 밖으로는 국경이 사라지고 안으로는 권력이 분산되는 세계화 지구촌 시대에, 남북이 한 민족이라고 한 울타리 안에서 한 체제를 만들어 한 정부로 합쳐야 꼭 통일이냐는 말이다. 남북이 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갈등과 긴장을 줄이며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자체를 21세기 열린 통일로 삼을 수 없을까. 이게 바로 남한 정부의 통일방안 1단계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실질적인 통일’이기도 하다.

남북 사이에 분단된 국토, 이념과 체제, 민족 가운데 하나로 합치기 가장 어려운 것은 당연히 이념과 체제다. 그 때문에 남쪽은 두 나라가 공존하는 국가연합을 제안해왔고, 북쪽은 두 체제가 공존하는 연방제를 주장해왔다. 나는 통일 한반도의 이념과 체제로 남쪽의 천박한 자본주의도 바람직하지 않고 북쪽의 배고픈 사회주의도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양쪽 다 변하는 게 좋다는 말이다. 원래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더 중시하고, 사회주의는 사회의 조화와 평등을 더 중시한다. 남쪽은 자본주의를 지키더라도 사회주의 장점인 평등을 조금씩 늘리고, 북한은 사회주의를 고수하더라도 자본주의 장점인 자유를 조금씩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남쪽에선 복지정책을 늘리면 되고, 북쪽에선 개혁개방을 확대하면 된다. 그렇게 남쪽은 오른쪽에서 조금씩 왼쪽으로 움직이고, 북쪽은 왼쪽에서 조금씩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남북이 ‘언젠가’ 가운데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엄청난 사회혼란과 막대한 통일비용 없이 자연스럽게 자유와 평등이 어우러지는 복지국가 체제로 통일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말이다.

앞에서 ‘언젠가’가 “통일이 언제쯤 될까” 또는 “통일한국의 날은 언제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나의 답이다. 지금 우리 세대는 분명 아니고 한 세대나 두 세대쯤 후에. 따라서 나는 통일이 언제쯤 되겠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통일이 어떠한 상태를 뜻하느냐고 되물으며 한 마디 덧붙인다. 통일이 언제쯤 되겠느냐고 묻는 대신 통일을 하루라도 앞당기려면 우리가 지금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보라고.

이제 통일을 하루라도 앞당길 수 있는 방안 한 가지 제안한다. 정경분리 (政經分離)와 퍼주고 퍼오기. 정경분리는 정치와 경제를 나눈다는 뜻으로, 남북 간 경제.사회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정치.군사 문제와 연계하지 않고 추진하자는 것이다. 정치와 군사 분야엔 협상하기 껄끄러운 이념과 체제가 끼어있어 갈등과 긴장을 풀기 어렵지만, 경제와 사회 분야에서는 이념이나 체제와 관계없이 교류와 협력을 늘릴 수 있다. 예를 들면,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북핵 문제’ 때문에 경제와 사회 분야의 교류와 협력까지 완전 중단하지 말자는 것이다.

정경분리 사례는 나라 안팎에서 찾을 수 있다. 국내에서는 1998-2003년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 또는 햇볕정책이 정경분리 원칙을 담고 있었다. 1999년 6월 연평도 앞바다에서 이른바 1차 서해교전이 일어났을 때도 1998년 시작된 금강산관광이 잠시라도 중단되지 않았다. 서해에서 남북 군함이 충돌하고 있어도 동해에선 관광선이 남북을 오간 것이다.

해외에서는 중국과 대만 관계가 정경분리 원칙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양쪽 관계는 정치.군사적으로 몹시 험악하다. 중국은 1970년대 초부터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우며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의 나라에 두 가지 제도가 공존할 수 있다는 ‘일국양제 (一國兩制)’를 앞세워 대만을 흡수 통일하려 한다. 이에 맞서 대만은 해협을 가운데 두고 한 쪽에 한 국가씩 존재한다는 ‘일변일국 (一邊一國)’을 내세우며 독립을 추구한다. 군사적으로 중국은 대만 건너편 난징군구 (南京軍區)에 병력을 집중시키며 대만을 위협하고, 대만은 이에 맞서 미국을 끌어들이며 미제 첨단무기로 군비증강에 힘쓴다.

중국과 대만이 정치.군사적으로 이렇게 첨예하게 맞서며 정상회담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금세 무력충돌을 빚을 듯하면서도 경제.사회적으로는 활발하게 교류와 협력을 펼치고 있다. ‘3통 4류 (三通四流)’를 통해. 3통은 우편통신의 통우 (通郵), 경제교역의 통상 (通商), 여객과 화물운송의 통항 (通航)을 가리키고, 4류는 경제, 과학, 문화, 체육 분야의 교류를 뜻한다. 이에 따라 2019년 중국-대만 교역액은 거의 2,500억 달러였고, 매일 양쪽을 오가는 항공편은 100회를 훌쩍 넘으며, 1년간 오간 사람은 1,000만 안팎이다. “경제로 정치를 누르면서 (以經制政), 먼저 양보하고 뒤에 요구한다 (先讓後要)”는 중국의 대만 정책이 불러온 결과다.

남북한도 한미합동 군사훈련이나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등 정치.군사 문제로는 상황에 따라 낯을 붉히며 티격태격 싸우더라도, 경제.사회 분야에서는 지속적으로 교류와 협력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서로에게 도움 되도록. 남쪽엔 많은데 북쪽엔 부족한 것을 퍼주고, 남쪽엔 없는데 북쪽엔 넘치는 것을 퍼오면 얼마나 좋을까. 예를 들어, 귀가 닳도록 들어왔듯 남쪽엔 먹다 남기고 버리는 음식이 너무 많은데 북쪽엔 식량이 부족하단다. 남쪽은 스마트폰과 반도체 등 전자제품이나 철강 생산 및 수출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데 거기에 반드시 들어가는 희토류나 철광석은 전혀 없지만, 북쪽은 그런 지하자원 매장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란다. 그럼 남쪽에서 식량이나 의약품 등을 먼저 퍼주고, 북쪽에서 지하자원을 퍼오면 남북경제에 환상적 궁합 아니겠는가. 그야말로 공생하고 번영하면서 통일의 날을 앞당기는 것이다.

 

≪씨알의 소리≫ 2021년 신년호 특집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