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일 한글학회장 "국어 연구와 실천은 수레의 양 바퀴"
권재일 한글학회장 "국어 연구와 실천은 수레의 양 바퀴"
  • 이승현 기자
  • 승인 2021.03.1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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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이 바르게, 쉽고 정확하고 품격있게 언어생활을 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교육하고 계몽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권재일 한글학회장은 지난달 2일 서울 종로구 소재 한글학회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달 2일 서울 종로구 소재 한글학회에서 만난 권재일 한글학회장

- 한글학회에 대해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우리나라 학술단체로서 가장 깊은 역사를 가진 한글학회는 1908년 8월 31일 창립돼 올해 113돌을 맞았습니다. 학회는 주시경 선생과 제자들을 중심으로 창립된 이후에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뀌어왔는데, 대표적으로는 ‘조선어학회’라는 이름이었다가 1949년 광복 이후 ‘한글학회‘로 바뀌었습니다.

한글학회는 학술단체로서 우리 말과 글을 연구하는 국어 연구의 기능과, 더 나아가 민족단체로서 이를 교육하고 보급해서 우리 말과 글을 발전시키는 국어 실천의 기능 두 가지를 목적으로 두고 있는데요. 여기서 국어 실천이란 우리말 바로쓰기, 외국어 오남용하지 않기 등에 대한 활동을 의미합니다.

국어 연구와 실천 두 가지는 마치 수레의 양쪽 바퀴처럼 동등한 비중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바르게, 쉽고 정확하고 품격있게 언어생활을 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교육하고 계몽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과 사업을 하고 계신지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연구와 실천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연구 기능으로서 가장 큰 일이라면 1년에 두 차례씩 전국 국어학 학술대회를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5월 15일 세종날을 전후해서 여는데 올해는 5월 14일에 세종날 기념 전국 국어학 학술대회가 있고, 한글날 전후로 한글날 기념 학술대회, 몇 년에 한 번씩 국제 학술대회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올해 5월에 있을 학술대회는 한국어의 역사를 주제로, 올 가을에는 한국어 교육, 국어 교육의 현황과 나아갈 방향을 주제로 할 예정입니다.

또 「한글」이라는 약 250쪽 정도의 학술지를 발간하는데 이건 수준이 높은 전문지라고 할 수 있고, 「한글 새소식」이라는 교양지에 가까운 월간지도 발간해서 전문적인 이론을 쉽게 풀어 대중들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는 땅 이름이나 방어 자료를 조사해서 보존하는 작업, 사전 편찬 작업 등을 하고 있습니다.”

 

- 기자: 상당히 중요한 많은 일을 하고 계신데, 회장님께서는 언제부터 언어에 조예가 있으셨습니까?

“학부 시절부터 언어를 전공했습니다. 한글학회에 몸담게 된 것은 대학원에 입학하면서부터였고, 1980년대에 학회 평의원, 2000년대 들어서 학회 이사, 그리고 2016년에 한글학회 회장을 맡게 됐습니다. 회원이 된 지는 거의 45~46년 된 것이죠.”

 

- 학회 운영에 어려운 점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실천 운동이 제일 어려운 것 같습니다. 연구 활동은 연구하는 대로 성과가 나오는데 실천은 시위를 한다고, 교육을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어서 그 방법론을 찾는 게 가장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시민강좌를 여는 이유도 강의에 참여한 사람들이 우리 말글에 대한 정신을 이해하고 따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데, 이것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할 수는 없는 겁니다. 모든 국민이 의사소통을 잘할 수 있도록 교육 보급을 하고 있지만 노력에 비해 성과는 크지는 않은 실정입니다.”

 

- 기자: 그럼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까요?

“모든 교육 기관, 언론 기관에서 협력이 돼야지 민간학술단체가 일을 추진한다는 게 사실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먼저는 국민들이 우리 말과 글에 대한 가치, 자긍심을 가져야 합니다. 상표나 상호 등에 불필요한 외래어를 줄여달라고 요청하면 “그렇게 하면 아무도 과자를 안 사 먹는다”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국민들이 그럴듯하게 영어로 상표를 붙이고 간판을 만들어야 고급스럽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한 아무리 학회가 나서서 뭘 추진해도 성과를 보기는 참 어렵습니다. 인식이 전환되면 저절로 이루어질 거라고 봅니다.

주시경 선생께서도 ‘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가 내린다’고 하셨듯이 우리 민족을 우리가 높이 평가해야 외국에서도 우리를 높여줄 겁니다. 말과 민족과 국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말을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라고만 생각한다면 어떤 말을 써도 되지만, 말은 쓰는 사람들의 오랜 역사와 정신과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민족 공동체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질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 교육계, 학계 등에서 한글 전용론과 국한문 혼용론의 대립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갖고 계십니까?

“저희는 한글 전용을 주창하는데, 그 이유는 한 마디로 ‘글자의 민주화’ ‘정보의 민주화’입니다. 만약 신문이나 잡지 등을 국한문 혼용으로 만들었다면 한문을 아는 계층과 모르는 계층의 차이가 크게 벌어졌을 겁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한자만 썼던 이유를 봐도 그렇습니다.

설령 한자를 쓰는 데 장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는 사람이 양보하고, 한자를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한글만 쓰기도 하는 것이 현대 사회의 평등 사상, 민주 사상, 정보 공유 사상에 걸맞은 것입니다.

그 핵심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 한글 전용이고, 더 아는 사람이 참아야 한문을 모르는 사람도 글자 생활을 하고 온갖 세상 돌아가는 정보를 알 수 있죠.”

 

- 그럼 한글 전용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왜 반대하는 것입니까?

“한글 전용을 반대하는 것이 국한문 혼용론인데, 최근에 국회의원들이 교과서에 국한문을 병기하자는 법안을 제출하면서 국한문 혼용을 해야하는 이유를 몇 가지 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한자가 동양 삼국의 의사소통의 도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은 방언의 차이가 워낙 커서 전적으로 표의문자인 한자를 써야만 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다 보니 획을 확 줄여서 간자를 쓰죠. 일본의 가나만을 쓴다면 모든 책 두께가 두 배로 늘어나기 때문에 한자를 함께 쓸 수밖에 없고, 그래서 이를 간추린 약자를 씁니다.

이렇게 약자를 쓰는 중국인, 일본인들에게 번체자를 보여주면 잘 알아보지도 못합니다. 게다가 중국어, 일본어는 그 소리, 의미가 다 달라서 ‘애인(愛人)’이라는 단어가 중국에서는 부인을, 일본에서는 불륜녀를 의미하니 한자만 써서는 의미가 통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인데 한자를 써야 소통이 잘 된다고 하는 주장은 언어 현실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두 번째는 우리의 전통 문화를 이해하고 계승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한문을 꽤 공부한 저도 쉽게 한문 고전 못 읽어내는데, 초등학생들에게 한자를 언제 가르쳐서 삼국사기 등을 읽게 하겠습니까. 한문은 중고등학교에서 교육을 철저히 하고 대학에서 한문 전문가를 양성해 그분들이 우리말로 번역한 것을 알리는 방향으로 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국어사전에 한자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70%라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사실이지만, 알고 보면 그중에는 일상에서 써보지 않은 단어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사용 빈도로 치면 굉장히 낮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말을 할 때 꼭 한자를 써야 의미가 통합니까? 예를 들어 ‘선생’이라는 단어를 보면 ‘먼저 선’ ‘날 생’이라는 한자만으로는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뜻을 생각해내기 어렵습니다.

한자를 배워도 고전을 읽을 수 없고, 우리가 배우는 한자로는 중국 가서 필담을 할 수도 없습니다. 중국에 진출하고자 함이라면 간체자를 배우는 것이 낫습니다. 정리하면, 한글학회의 기본 생각은 ‘국어는 한글로 가르쳐야 하고, 한문은 독립된 한문 교육을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 최근 인터넷,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한글의 오남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예전에 학회 건물 앞에 ‘외래어 마구 쓰기 이제 그만’이라는 펼침막을 설치했었습니다. 요즘 우리 글자 또는 언어 생활의 파격, 즉 줄임말이 많고 인터넷 상의 용어가 너무 많아졌는데요. 영어 남용도 문제지만 쓸 바에는 제대로 써야지 오용을 하는 것도 정말 문제입니다.

또래집단에서는 그들끼리 쓰는 은어나 줄임자, 초성자, 문법을 비트는 표현들이 많은데 사실 무조건 비판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또래집단 안에서는 어떻게 보면 창조적인 활동으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을 밖으로 가지고 나오면 문제가 되죠.

세대가 다르고 집단이 다른데 그런 용어를 과하게 쓰는 것은 언어의 의사소통 기능을 깎아내리는 것이기 때문에 어른들, 방송, 교육이 나서서 젊은 세대를 교육할 필요가 있습니다.

적절하게 모든 세대가 공유할 수 있는 줄임말은 괜찮다고 보지만 규칙도 없이 쓰이는 것이 바깥 세상으로 나오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요즘 기성세대도 마찬가지로 경제용어, 부동산용어 등에서 똑같은 양상이 보이지 않습니까? 젊은 세대만 나무랄 일은 아니고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합리적인 선에서 줄임말을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외국어, 외래어가 들어오면 신문사·방송사의 어문기자들과 국립국어원, 문화체육관광부등의 위원들이 모인 정부·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에서 두 달에 한 번씩 표준을 정해서 배포합니다.

그런데 심의의 기준이 되는 국어기본법에 선언적인 조항만 있고 처벌 조항이 없어서 규칙을 정해도 규제가 어렵다는 것이 한계입니다. 그러니 적어도 정부 기관에서 나오는 공문서, 보도자료만이라도 규칙을 따를 수 있는 방편을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지회 활동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회활동은 나름대로 활발합니다. 특히 부산, 대구, 광주 등의 지회는 도청과 협력해서 한글날 행사도 하고 공문서 검토도 해주고, 각 지역에 외국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어 교육 지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해외지역에서는 중국지회가 제일 활발한데, 각 대학의 한국어과 학생들 말하기 대회를 해마다 열어서 시상도 하고 있습니다.”

- 한글운동의 성과가 더 나타나려면 지금과 같은 지회의 꾸준한 활동과 국민들의 관심, 정부의 지원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봅니다. 저희 신문사도 학회의 활동에 관심 갖고 지속적으로 알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