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중 패권경쟁과 한국의 길
[칼럼] 미중 패권경쟁과 한국의 길
  • 연합매일신문
  • 승인 2021.08.20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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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China Rivalry for Hegemony and South Korea’s Way(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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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

1. 새로운 냉전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수십 년 지속될 것 같다. 미국과 유럽 일부 전문가들은 1990년대부터 두 나라 사이에 ‘새로운 냉전’ 또는 ‘제2의 냉전’이 시작됐다고 주장해왔다. 나는 동의한다. 다수 전문가들은 냉전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냉전’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문제다.

 

2. 미중 패권경쟁

두 강대국 간의 패권경쟁이 적어도 네 분야에서 전개되어왔다. 첫째, 무역전쟁이다. 특히 2018년 관세전쟁이 거셌다. 미국의 무역적자가 크게 줄지 않는 한 전쟁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중국에 대한 미국 무역적자는 중국을 제외한 5대 무역상대국에 대한 적자 합계보다 훨씬 많다. 최근 5년간 (2016-20년) 미국은 연평균 중국에 3,590억, 캐나다에 174억, 멕시코에 847억, 일본에 659억, 독일에 642억, 한국에 229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둘째, 기술전쟁이다. 5세대 (5G) 통신, 인공지능 (AI), 생물공학, 로봇공학, 우주기술 등 21세기 경제와 군사를 이끌 분야에서 싸우고 있다. 첨단기술을 앞세운 ‘중국제조 2025’ 산업정책에 대한 미국의 견제나 중국의 대표 다국적 IT기업 화웨이 (華為技術)에 대한 미국의 압박과 제재가 생생한 사례다.

셋째, 이념전쟁이다. 전통적 자본주의-공산주의 대결 대신 민주주의-권위주의 대결 구도다. 미국은 2021년 3월 국가안보전략 지침을 통해 동맹국 및 협력국들과 중국 권위주의에 맞서야 한다고 했다. 대만을 지지하고 홍콩, 신장, 티벳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옹호하겠다고 덧붙였다. 중국 군부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이 중국을 은밀하게 전복시키려 시도한다고 경고하며, 미국과의 큰 투쟁은 이념갈등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넷째, 영해 분쟁이다. 중국이 2013년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구축하기 시작하자 미국은 항해의 자유를 앞세우며 군사 개입을 늘려왔다. 세계를 땅길과 남중국해를 통해 바닷길로 연결하려는 중국의 ‘일대일로 (一帶一路)’ 사업은 2050년까지 세계 최강이 되겠다는 ‘중국의 꿈 (中國夢)’을 이루기 위한 필수과정이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구상’은 남중국해를 봉쇄하며 중국을 포위하려는 정책이다. 남중국해 안팎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과 갈등이 격화하지 않을 수 없다.

 

3. 패권경쟁의 배경: 중국의 급성장과 국가목표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 이래 30년 이상 연평균 10%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2010년 일본 GDP를 앞서며 제2 경제대국이 되고, 세계 최대수출국이 됐다. 2012년 세계 최대무역국이 되고, 2014년 구매력 GDP로 미국을 앞섰다. 2000년대부터 경제성장률 보다 군비증가율이 커졌다. 대만해협, 남중국해, 동중국해에서 미군사력에 맞서기 위한 ‘접근반대 지역거부’ 군사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중국은 공산당 창립 100주년이 되는 2021년까지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 ‘샤오캉 (小康) 사회’를 만들고, 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융성하는 현대 사회주의 ‘따퉁 (大同) 사회’를 이룩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와 함께 2050년까지 세계 최강이 되는 ‘중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일대일로’, ‘아시아인프라 투자은행 (AIIB)’, 첨단기술 산업을 육성하는 ‘중국제조 2025’, 군비강화를 위한 ‘군현대화 2035’ 등을 추진하고 있다.

 

4. 미국의 대응: 저지와 포위 정책

미국은 소련이 해체된 1991년 직후부터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 되어 경쟁국이나 도전국의 등장을 경계해왔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일본의 군비증강을 요구하며 미일 군사동맹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왔다. 국방부는 의회 요청에 따라 2000년부터 20년간 매년 중국의 군사력에 관한 보고서를 만들었다. 중국의 ‘접근반대 지역거부’ 전략을 무력화하기 위한 준비도 해왔다.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군사력을 증강 배치하는 ‘아시아 회귀’ 또는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펼쳤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일본-호주-인도의 ‘4각공조 (Quad)’를 통해 중국을 저지하며 포위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세웠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4각공조 확대 (Quad Plus)’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주의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한편 자본주의 선진국들의 모임인 ‘G7’을 ‘G10’이나 ‘G11’으로 확대해 중국을 고립시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5. 한국의 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의 선택

미중 패권경쟁은 한국을 난처한 처지에 빠뜨리고 있다. 한국에 미국은 유일한 군사동맹국이고 중국은 최대무역국이다. 미국은 한국과의 군사동맹 강화를 원하고, 중국은 군사동맹이 냉전의 유물이라고 주장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한국은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하면서 중국과의 협력도 증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과 중국이 협력 대신 경쟁을 벌이는 한 어렵다.

먼저 한미동맹의 목적을 생각해봐야 한다. 군사동맹은 ‘공동의 적’을 겨냥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인가? 중국이 미국에겐 경쟁국이자 도전국이지만, 한국에겐 최대무역국이다. 최근 5년간 (2016-20년) 한국-미국 교역액은 연평균 1,255억, 한국-중국 교역액은 2,410억 달러였다.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연평균 166억, 대중 무역흑자는 380억 달러였다. 한국이 중국과의 무역 없이 경제 번영이라는 국가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한미 공동의 적이 중국 아니면 북한인가? 북한은 미국의 적이지만, 남한에겐 회해협력을 통한 평화통일의 상대다. 북한을 적으로 삼는 한 남한의 가장 중요한 국가목표인 평화통일을 추진할 수 없다.

한미동맹이 미국에겐 이익이지만, 남한의 경제번영에 해롭고 평화통일에 걸림돌이다. 미국의 ‘중국 견제를 위한 아시아 회귀’는 ‘동북아 냉전구조로의 회귀’가 되어왔다. 더욱 위험한 것은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다. 대만해협, 남중국해, 동중국해 등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나면 남한은 자동적으로 전쟁터가 되기 쉽다.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한 세계최대 해외미군기지가 남한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평화통일과 경제번영의 국가목표를 이루기 위해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에 휘말리지 않고 ‘균형외교’나 ‘등거리 외교’ 또는 ‘중립’을 추구하는 게 바람직하다. 많은 한국인들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을 인용하며 한국을 새우에 비유한다. 역사적으로 1894-95년의 중일전쟁, 1904-05년의 러일전쟁, 1940-80년대 미소냉전에서는 새우였다. 1990년대부터 한국은 더 이상 고래 사이의 새우가 아니다. 앞으로 일어날지 모를 미중전쟁에서는 더욱 새우가 될 수 없다. 경제력은 세계 10위 또는 최상위 5%에 들고, 군사력은 세계 6위 또는 최상위 3%에 드는 강국 또는 중견국 아닌가. 미국과의 군사동맹에 대한 의존을 줄이며 균형이나 중립을 통해 경제번영과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게 바람직하다.

 

출처: 이재봉의 평화세상(https://blog.daum.net/pbpm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