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문재인 정부, 촛불 민심을 직시하라! 적폐를 청산하라! 공약을 이행하라!
사설 , 문재인 정부, 촛불 민심을 직시하라! 적폐를 청산하라! 공약을 이행하라!
  • 연합매일신문
  • 승인 2017.06.28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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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민대중의 입장에서 비판과 참여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 신자유주의 정권의 한계속에서도 진보영역의 시민권을 확장해야

- 촛불민중은 적극적으로 청구서를 들이밀며 채무이행을 요구할 것이다.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이다.

 

18대 대통령 박근혜 탄핵, 19대 대통령 문재인 당선!

박 탄핵과 문 당선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광화문에서 한반도 방방곡곡 삶의 현장에 까지 달구어 낸 촛불시위의 가장 큰 결과이자 성과물일 것이다. 박근혜의 기저효과(基底效果, Base effect) 때문인지,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초 국정지지율은 역대 대통령 중 최고치인 김영삼의 83%를 훌쩍 넘어 89.4%를 보여주고 있다. 민심은 숫자로 나타난 것일까, 숫자는 진실을 말하는 바로미터(Barometer)일까.



촛불의 한과 희원(希願)이 서려있는 문재인의 최고지지율

박근혜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시위는 높새바람 일렁이는 바싹 마른 봄 들판의 들불과 같았다. 거침없이 번져가는 형세가 자기몸이 스스로 다 타 올라야 스르르 꺼져가는 촛불처럼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기세였다. 박근혜 탄핵은 제도권 언론의 취재와 경쟁적 폭로에 기인한 성과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박근혜에 대한 불신과 최순실에서 발단한 국정농단 상황이 전국민적 분노와 저항에 결합됨으로써 시나리오 없는 한 편의 세계사적 대서사극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서사극을 상연하는데 있어 배우도, 관객도, 군중도 제 몫의 역할을 다했다. 서사극은 누구도 미리 준비하지 못했고, 아무도 의도하지 못한 도도한 역사의 물길이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헌법재판소의 파면으로 탄핵은 현실이 되었다. 탄핵의 와중에도, 세계 경제침체와 동반한 한국경제의 장기침체 속에서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한국과 북․중․미․일의 공방은 더욱 거칠어 졌다. 북한은 쉴 새 없이 미사일 실험으로 시위를 벌이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고, 중국은 사드를 이유로 무소불위의 정치․무역․관광 제재를 취하며 강압하고 있다. 트럼프는 당선 전부터 대(對) 한국 무역적자를 계속 지적하며 정치․무역․군사부분에서의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일본과는 위안부 문제로 압박을 받으며, 한국은 그야말로 발 붙일데 없는 고립무원의 상황이었다.

이렇게, 중·미·일 간의 급박한 국제공세속에 열중쉬어 얼차례 자세로 국내 대선에 골몰해야 했던 한국의 상황은 그 어느때보다 긴박하고 위태로왔던 위기 비상상황이었다. 이렇게, 불안하고 불편한 시기에 곧이어 닥친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 한국 왕따)은 당연한 것이었다. 문재인은 임기초반의 어수선함을 특유의 속도전과 업무지시를 통해 ‘개혁 드라이브’를, 인사는 ‘개혁·탕평 코드’를 맞춰가며, 국민을 향한 직접 소통을 하면서 시중의 지지를 넓혀가고 있다. 더군다나, 구정권에서 해결되지 않고 답보상태였던 여러 사회현안들을 발빠르게 정리하면서, 촛불의 희원(希願)을 실제 현안해결로 연결지으려 시도하고 있다.

문재인은 취임 첫날인 5월 10일 일자리위원회 설치를 1호 업무지시로 내렸다. 곧장,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임기 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하며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고, 세월호 참사 희생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참배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및 유족 위로, 검찰 돈봉투 만찬 사건 감찰, 공수처 설치 제시, 4대강 사업 정책감사,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사과 검토, 노후 석탄 화력발전소 셧다운을 통한 미세먼지 응급감축, 국정교과서 폐지, 치매 국가책임제, 좌와 우를 넘어서는 보훈등을 약속하였다. 검찰에 윤석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지검장, 공정거래위원장에 김상조, 국정원장에 서훈으로 국내 정보담당관제 폐지, ‘참 나쁜 사람’ 노태강을 문화체육부 차관으로 임용하는 등 개혁인사 등용으로 구태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하나같이 깨알같은 미담(美談)을 불러 오는 것들이었다. 누리꾼들 댓글에는 “대통령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이렇게 쉽게 ‘사이다 세상’으로 바뀌다니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평가와 관련해 ‘잘 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89.4%(매우 잘하고 있다 54.1%, 어느정도 잘하고 있다 35.4%)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또한, 민주당의 정당지지율은 53.7%를 기록했다(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6월 9~10일 이틀 간 여론조사 결과, 전국 1028명, 응답률 14.6%,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0%포인트). 박근혜의 집권초기 지지율 44%, 대선시 문재인 자신의 당선 득표율 41.1%의 두 배를 훌쩍 넘어서는 경이적인 기록이다. 문재인 정부는 7개월여 탄핵정국 속에서 혼란스러웠던 정국을 일시에 바로세우며, 임기 초반의 어수선함을 떨쳐버리고 성공적으로 연착륙하는 매우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소통․통합․협치란 미명하에 ‘중도’노선 걸으며 ‘대충’개혁의 한계에 갖힐 가능성 경계해야

그러나 냉정하게 말한다면,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여기까지이다. 현재의 호감과 지지는 상당부분 옛 박근혜정권의 기저효과에 기인한다고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한계는 시일이 갈수록 조급함과 우유부단함으로 서서이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이 파국의 균열은 초기 조각(組閣)에서 눈치보며 흔들리는 인사청문회에서 시작될 조짐이다. 과거, 문재인이 옛 민주당 대표로 당내 비주류와의 정파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민주당내 호남세력과 안철수계로 대표되는 국민의당이 분당되어 나오는 것에서 보듯이, 결단력, 추진력, 판단력에서 상당히 모호하고 우유부단한 잠재적 특성이 오래지 않아 노출될 것이다. 결국, 이러한 정치력을 시험하는 문재인 정부의 중간결산 성적표는, 내년 2018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와 연계하기로 한 개헌문제에 달려 있다. 그리고, 마침표는 2020년 총선거로 갈음될 것이다.

문재인의 ‘소통․통합․협치’라는 만능열쇠같은 화려한 수사(修辭)는 모호성과 우유부단함을 본질로 한다. 통합은 언뜻 듣기에 화합과 연대를 의미하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그러나, 이것의 이면에는 포퓰리즘(Populism, 대중영합주의), 화려한 보여주기 쇼(Show)통, 언론 플레이의 다른 말일수 있다. 통합은 아무리 좋게 말해도 기껏 이도저도 아닌 ‘중도’의 다른 말로 곡해되기 쉽다. 더불어민주당내의 좌·우·중도의 이재명, 안희정, 문재인 등 세후보가 나섰고, 중도를 표방한 안희정 후보가 민주당과 보수층으로부터 잠시 여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중도는 또다른 어정쩡한 기회주의 스텐스(Stance)일 뿐이다.

‘새정치’ 중도후보 안철수가 실패한 이유는 스텐스가 매우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반공주의, 지역주의가 팽배한 정치지형에서 중도개혁(?)이라는 정치노선은 자가당착이기 십상이다. 안철수의 지지기반은 호남지역에 기반한 배타적․상대적 개혁 지지층, 영남과 기타 지역의 보수중산층으로, 이들을 일괄하여 포용해야 한다는 대단히 자기모순적인 지지호소 전략이 요구되었다. 이러한 중도스텐스는 확장성이 클때는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지만, 일단 지지율이 정체되기 시작하면 양쪽에서 협공을 받는 불안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이는 선거내내 안철수가 왼손과 오른속이 서로 칼과 낫, 도끼와 망치를 견주는 자가당착적이자 이율배반적인 선거운동을 해야하는 딜레마(Dilemma)에 빠지게 했다. 이는 후보개인의 자질, 함량, 그리고 정치적 미숙함과 결합됨으로써 그 불협화음은 오히려 확장되었고, 결국은 껍데기만 남은 셈이 되었다. 안희정, 안철수 류의 중도에 대한 환영(幻影)과 각광은 국정농단 시기 보수우파의 위기의식에서 기원한 일시적인 환상(Illusion)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중도와 통합속에 숨어 적당한 대충주의로 안주하려는 저의를 경계해야 한다.

 

사드논란은 한․중․미․일의 경쟁구도에서 동아시아 주도권을 강화하는 기회로 만들어야

그런데, 문재인에게도 모호한 중도(통합․협치) 전략은 후보시절에 이미 나타나고 있다. 문제인은 사드에 대해 매우 모호한 립(Lip) 멘트를 날려왔다. “사드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환경영향평가등 사드 도입과정에 대해 다시 합리적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사드가 가진 여러 안보측면의 마이너스적 요소에는 침묵으로 미국의 이익을 대변했다. 사드는 저고도로 날아오는 북핵을 사전탐지하고 격추하는데 도움이 안되고, X-band 레이더의 감시영역이 중국 베이징까지 도달하여, “대북(對北) 방어용이라기 보다는 중국 감시․견제용”(포스톨 MIT 교수)임이 이미 밝혀졌다. 한국에서 미군의 주둔은 남한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매개로 환태평양에서 자신들의 지배력을 유지․확장할 목적으로 주둔하는 것임이 더욱 명확해 졌다. 분명코 말하지만, 미군의 존재는 한국 방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 자신의 이익에 우선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입장에서는, 한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 오히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사드를, 어떻게 전술적으로 효과를 약화시켜 중국으로부터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되 미국의 위신은 세워줄 것이며, 보수세력의 불만을 누그려뜨리고 평화민주세력에게는 명분을 줄 것인가 하는 신의 한 수가 절박할 것이다. 그러나, 이 난해한 고차 방정식을 풀어주는 인공지능 알파고와 같은 절묘한 수는 나올수가 없다. 문재인의 모호성 전략 또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확인도 부정도 해주지는 않는)는 선거국면에서는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영합하는 묘수일 수 있었겠지만, 현실정치에서는 자충수요, 외골수였던 셈이다.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이며,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며, 모두에게 좋은 친구는 진정한 친구가 아닌 것이다. 안철수의 중도 딜레마는 그대로 문재인에게도 업보(業報)가 될 것이다.

문정인이 지적했듯이, 안보는 군사안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국제 외교, 국내 정치, 경제, 국방, 국민안전, 치안등 다양한 측면에서 여러 수준의 안보가 존재한다. 이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이 병행되어야 한다. 미국에게는 사드를 전략적 고리로 삼아 더 이상의 사드 추가 도입없이 현상태에서 철거를 전제로 한정적․제한적으로 유지를 하되 주둔비를 받아야 할 것이다. 동시에, 앞으로 분명하게 한국군의 전시작전권을 회수해야 하며, 주권국가로서 미군으로부터 미군기지 사용료를 받아야 하며, 장기적으로 미군 철수를 강제해야 한다. 중국에게는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중립외교에 대한 신뢰를 불어넣고 경제․관광 금수조치를 해제하고 개방으로 가는 상호협력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이때 한국은 미국과 중국, 소련과 일본에 끼여 등터지는 새우꼴이 아니라, 4대강국을 제어하며 주도권을 행사하는 골든 키(Key)로 역할할 수 있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고 견인하여 경제․정치․외교․군사적으로 독자적인 국가의 위상을 세워 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나라의 국격이자 대통령의 품격이어야 한다.

 

촛불이 일구어 낸 19대 대선

박근혜 탄핵은 위선과 거짓 변명과 상황조작으로 거듭되는 헛발질과 ‘똥볼차기’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 인성도, 자질도, 능력도 안되는 박근혜가 독재자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유로 후보가 된 것 자체가 한국 정치사의 코메디 같은 한 장면이었다. 무엇보다, 집권초기부터 공적 국정시스템 자체가 마비된 채로 국정농단이 이루어진 것이 가장 큰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불통과 부패로 불만은 쌓여가는데, 총선을 앞두고 유승민 개인을 ‘배신의 정치’라 쫓아내며 박근혜 개인정치만을 추구한 조폭정치의 행태, 친박감별사라며 소위 친박에게만 국회의원 공천을 주며 유신시절 유정회 국회의원을 면접보며 뽑듯 파벌정치를 추구하였고, 마지막에는 김무성 대표의 옥쇄 도피로 코메디의 끝판왕을 보여주었다. 이는 우파의 분열속에 청산․심판형 투표를 불러일으키는 자멸의 길로 고속직행한 셈이다.

국정농단․촛불정국에서 한국의 국민들은 의외로 대단히 침착하고 질서있는 자세로 대선에 몰입하였다. 촛불이 여전히 타오르는 중에 문재인은 일방적으로 유리한 대선국면에서 비교적 쉽게 낙승하였다. 그러나, 선거막판으로 가면서 그동안 의기소침하고 위기감에 빠져있던 보수층이 나름 흐름을 만들어가면서 막가파 꼴통보수후보의 홍준표가 24%라는 일정수준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 이 점은 한국사회에서 아직도 수구보수세력이 충동질하는 지역색과 협잡에 가려, 옳고 그름을 판별하지 못하는 다수가 일정비율 이상 절대적 수치로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 상황에서 가장 교묘하고 노회한 술수를 부린 정당은 자유한국당이었다. 새누리당을 위장폐업후 신장개업한 자유한국당의 대선전략은 승리하는 전략이 아니라, 보수층을 지키고, 지지지역을 고수하고, 지배력을 강고히 하는 수세적인 전략이었다. 망해가던 한국당이 24%의 지지를 확보한 것은, 이번 대선이 홍준표의 패배도 아니며, 박근혜의 국정농단에도 불구하고 이성적 판단을 포기한 집단이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른바 설득도, 개명(開明)도, 교육도, 자성도, 이성도, 사고도 불가능 한 “치매수준의 수구꼴통” 보수세력들이 한반도 특정지역, 특정연령대에 광범위하게 밀집되어 있음을 잘 보여준 증표라고 할 것이다.

이번 대선은,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적 대립’, 호남과 영남이라는 ‘지역적 차별’, 20·30·40․50대와 60·70대의 ‘세대간 대결’도 아니었다. 그것은 불의․부패․구태에 맞선 정의․청산․개혁의 문제였다. 그러나, 선거 표심은 결국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구체제)와 네오 레짐(Neo regime, 새로운 지배체제)의 ‘선택’의 문제였고, 유권자들은 네오 레짐을 선택하였다.

 

18대 대선은 복고․회고형, 19대 대선은 심판․청산형

18대 대선은 댓글조작, 국정원 선거개입 등으로 여론조작과 부정선거의 영향을 배제한다면, 두 후보간의 3.53% 격차(박근혜 51.55%, 문재인 48.02%)는 사실 선거의 결과가 다를수도 있었다. 문재인의 19대 대선당선은 오히려 4년이 늦은채 이루어진 것으로, 돌고돌아 한국 헌정사에 불행을 만들고서야 제자리를 찾은 셈이다.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문재인후보에 대한 투표가 복고(復古)형 또는 회고형 투표였다면, 이번 19대 대선은 심판과 청산의 투표 양태를 보여주었다. 박근혜는 박정희로 기표(旗標)되는 한강의 기적, 근대화, 보릿고개 극복, 성장․발전이라는 긍정적 메시지로 독재, 친일, 배신, 반공, 정적살해, 분신, 노동탄압, 농가부채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고 국민의 환심을 사는데 성공하였다. 문재인 역시나 자신의 정책보다는 김대중-노무현으로 연결되는 잃어버린 정권을 되찾겠다는 ‘망국의 왕자’처럼 복고적 의지가 강했다. 그러나, 문재인의 ‘망국의 한’ 만으로 정권을 되찾기에는 박근혜의 ‘망부(亡父)를 위한 권력의지’가 매우 강력했으며, 이명박의 부패에 대한 염증보다 노무현에 대한 비토(Veto, 거부권)를 더욱 심각하게 여겼다. 결국, 박정희의 타살과 노무현의 자살이라는 죽임을 당한자와 죽음을 선택한 자를 둘러싼 유산상속자들간의 대리전은 박근혜의 승리로 끝난 셈이다. 이러한 점에서, 박근혜의 국정농단에는 집권에 실패한 문재인의 원죄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19대 대선은 철저히 청산형․심판형 투표로 이어졌다. 이른바, 촛불의 요구는 지배질서의 재편이자 국정의 개편이었다. 그러나 이는 부르조아 보수구조하에서 상황이 급조해 낸 더불어 민주당 보수개혁파의 승리에 불과한 것이다. 이 선거의 결과는, 미래를 두고 투표한 것이 아닌 현재적 시점의 국정농단에 대한 응징 차원에 불과한 것이었다.

지금부터 문재인 정부의 과제는, 행정부내 새누리당 코드에 맞춰진 수구보수잔당세력들에 의한 방해, 태만, 무시, 위계(爲計)등을 어떻게 극복하고 분위기를 다잡아 개혁의 길에 나서게 할 것인가이다. 앞으로, 문재인-민주당이 적폐세력-자유한국당을 제어하면서 심판과 청산의 입장을 어떻게 견지해 나아갈 것인가가 중요한 대목이다.

 

진보진영은 무엇을 했는가

진보진영의 입장에서 본다면, 결과론적으로 19대 대선은 사실 18대 보다도 더 호기로운 정세라고 할 수 있었다. 18대는 중도사퇴한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 외에, ‘빗자루 혁명’ 청소노동자 김순자 후보, 기륭전자 해고노동자 김소연 노동자 후보가 경쟁하였다. 19대 대선은 국정농단이라는 초메가톤급 투쟁사안과 노동현장이 더욱 심각한 상황이었음에도 진보진영은 후보전술조차 가동되지 못한채 대세에 압도되고 쓸려나가듯이 무기력해 보였다. 진보진영은 촛불판이 흔들릴까봐 두려워하며, 문재인후보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나약함을 노출하였다. 이는 오늘날 진보진영이 진보를 지향하면서도 강고한 보수반공이데올로기 때문에 자기지향성을 밝히지 못한채, 진보를 언제나 소부르조아 세력의 후비대로 착각하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소심함에 기인한다.

이번에는, 아예 정의당의 합법주의, 사민주의, 제도권 정치가 고민도 없이 대선의 선거흐름을 주도하였다. 민중연합당 김선동 후보의 출마가 있었지만, 이는 철지난 주사파 패권정치의 상징 이석기의 흘러간 물레방아 돌리기식 한풀이에 불과한 것이었다.

정의당과 심상정 후보는 대체로 선전하였다. 과거 많은 선거와 다수의 의정활동을 통해 잘 단련된 정치인으로서의 자세, 준비된 대통령 공약, 뛰어난 정책이해 능력, 판을 바라보고 주도할 수 있는 후보개인의 능력, 두자리 지지율(6.2%)도 확보하였다. 이는 토론회에서 보여준 심상정 후보의 개인기에 의존한 일시적인 스포트라이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이것이 전부였다. 진보진영 정의당은 역대 민중후보와 진보계열후보들의 선거전략에서 무엇을 계승․발전시키고 어떤 차별점을 보여 주었는가. 단언컨대, 투쟁하며 호소하고, 투쟁속에 주장과 구호를 외치고, 정치력을 모아내는 기세는 부족하였다. 철저히 제도화되고 순치된 진보이자, 부르조아 질서와 의정제도에 잘 길들여진 애완견 진보당이 아니었던가. 진보세력만의 욕구를 담아내지 못하고 민주당과의 정책의 색조차이로 진보표를 긁어모으자는 대단히 수동적이고 구태의연한 선거전략이었다.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당선가능성으로 출마한 대선이 아니었다면, 선거를 통해 당의 조직을 강화하고 서민들에게 가슴에 남는 선거공약들을 아로새기고, 철저히 정치이해구조를 강화시켜 대중들의 정치적 진출을 도모하는 선거운동이 되지 못하고, 제도권안에 안주한 채 상대적 진보성에 머물렀다.

과거 대선 시기 진보진영은 후보전술을 통해 투쟁하는 후보를 선택하였으며 투쟁현장과의 강고한 연대를 통해서, 그리고 각정파의 후보전술, 선거투쟁, 선거전술 등 논쟁과 실천을 통해 정치적 역량을 키워 왔으며, 이를 대선후의 조직적 성과로 가져 왔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진보정당은 부르조아 선거판 제도정치권의 논리에 그대로 흡수되었으며, 이를 아무도 제지하거나 지적하는 정파는 없었다. 비록, 새누리당 세력과 박근혜를 탄핵시킨다는 시기적 급박성은 중요했지만, 부르조아 정치권의 공세와 파고에 막혀 대선후보 전술에 대한 심각한 고민조차 없이 대선국면에 용해되어 버린 진보정치권은 심각한 내부비판이 필요할 것이다.

언제나, 진보진영은 합법영역에서 새누리당(또는 자유한국당)이 집권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상대적 개혁세력인 민주당 계열이 집권하는 것이 좋다는 식의, ‘반새누리당’을 중심으로한 느슨한 연대가 차선책이라는 판단하에 진보당에 대한 투표를 민주당 당선의 하위 목표로 두고 있다. 진보진영 다수가 선거환상을 깨지 못하는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진보운동이 단지 몇 개의 의석으로, 대통령 선거에서 단지 몇%를 획득한 세력으로 평가되는가, 하는 것에 자위하고, 위안받고, 안주하는 그러한 진보는 썩은 진보이자 망한 진보이며, 단지 구색맞추기 후보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앞으로, 진보진영은 문재인 정부를 어떻게 비판․견인할 것인가. 문재인 정부의 공약 이행에 대해 철저하게 감시하고, 공약을 근본적으로 후퇴시키는 여러가지 시도들에 대해 그 기회주의성을 철저하게 폭로해 내어야 하다 그래서, 문재인을 신자유주의 정권의 한계속에 포박시키되,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 진보영역이 시민권을 더 넓힐수 있도록 많은 부분들을 견인해 내어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이다.

문재인 정부의 한계는 이미 명료하다. 구조 변화없는 ‘개혁’만으로는 곧장 한계에 닥칠 것이다. 분배위주․소득중심의 성장정책은 정부의 재정지출에만 의지하는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은 재정확대를 통해, 일자리 확장→ 소즉증가→ 소비지출 증가→ 생산 증가라는 선순환을 전제로 한다. 소득이라는 분배측면에서의 확장을 통해 경제의 볼륨을 키우고 성장으로 견인한다는 전략은, 일견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있어 왔던 낙수효과를 분수효과로 바꾼 셈이다. 끝과 시작, 원인과 결과가 뒤바뀌어진 점은 새로운 상황인식일수 있지만, 이러한 선순환의 전제로 재정을 위한 세금은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인가?, 협치로써 조세증가가 가능할까? 라는 현실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생산과정 전차원에 대한 혁신적 사고를 하지 않는 한, 역대 신자유주의 정권의 연장선이라는 한계는 극복하기 힘들 듯 싶다.

오늘 문재인의 지지율에 환호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하여 보자. 박근혜의 국정농단이 아니었던들,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수가 있었을까? 촛불이 아니었던들 문재인이 수월하게 당선되었을 수가 있었을까? 문재인과 민주당이 정책적 대안으로 국민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니라, 박근혜의 국정농단에 의한 반사이익은 아니었을까? 이점에 대해 문재인 정권은 진실하게 답해야 할 것이다.

촛불의 다수가 문재인을 지지했을지라도 촛불의 종착점은 문재인의 ‘개혁’이어서는 곤란하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농단에 대한 개량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과도기로서의 경과지점일 뿐이다. 철저히 문재인을 딛고 넘어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 집권초반부터 문재인 정부에 대한 공약검증과 공약이행을 촉구하는 날선 비판과 감시가 필요하며, 한편으로는 더욱 개혁에 대해 압박하고 견인하고, 언제든지 문재인 정부 정책의 불철저성과 기회주의적 한계를 배격하고 폭로할 수 있어야 한다.

문재인 집권이후 촛불은 살짝 빛이 바래졌다. 그러나, 이제부터 진짜싸움은 문재인 정부와 진보진영간의 암묵의 대리전으로 시작될 것이다. 촛불은 문재인에게 담보도 없이 외상으로 권력을 쥐어 주었으나 아직 청구서도 발행하지 않았다. 촛불의 외상장부에는 문재인이 유일하게 채무자로 기재되어 있다. 이제 촛불민중은 적극적으로 청구서를 들이밀며 채무이행을 요구할 때이다.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