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구’ 청산과 보수정치의 출발
사설, ‘수구’ 청산과 보수정치의 출발
  • 연합매일신문
  • 승인 2018.02.03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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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정치의 출발은 수구 잔재 박근혜 탄핵이 계기

중도세력의 발전적 분화를 통한 보수 대(對) 진보 구도 강화해야

 

한국 정치 이대로는 안된다. 결론부터 말 한다면, 지금 보수가 절박하다. 보수를 살려야 한다. 대통령 권좌에 있었던 박근혜가 국정농단으로 탄핵되고, 이명박이 부정부패로 검찰행을 오늘내일로 저울질 하고 있는 작금의 시기가 바로 기회이다. 한국의 올바른 정치 발전, 제대로 된 한반도 공동체를 일구어내기 위해서 진정으로 보수를 바로 세워내야 할 때이다. 지금이야말로, 보수가 수구를 궤멸시키고, 청산하여 자기존재를 새롭게 다시 정립해야 할 시점이다.

 

현재의 좌파/우파, 보수/진보, 좌빨/보꼴 구도는 허구

그렇다면, 좌파/우파, 보수/진보란 무엇일까. 프랑스 대혁명은 인류역사에 있어 산업혁명과 함께 정치적 측면에서 대격변기로 일컬어지고 있다. 프랑스 대혁명 시기, 국민의회에서 좌측에는 왕정을 무너뜨리고 프랑스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려는 공화파가 자리를 잡았고, 우측에는 과거의 왕정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왕당파가 자리하였다. 이후 루이 16세가 처형당한 후 국민공회 당시에도, 좌측에는 서민과 노동자를 대신하여 급진적인 변화를 주장하는 ‘자코뱅파’가, 우측에는 자산가 부유계층을 대표하며 점진적인 변화를 꾀하는 ‘지롱드파’가 자리하게 되었다. 이로써, 급진적 개혁적인 성향을 진보 혹은 좌파, 반면에 점진적인 변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을 보수, 우파라고 부르게 되었다.

보수주의(保守主義; Conservatism)는 기존의 법과 질서를 존중하고 전통을 지키는 것을 말 한다. 따라서, 보수는 사유재산, 자본, 시장, 경쟁, 자유, 법치에 대해 더 민감하고, 가족을 중요시 여긴다. 진보주의(進步主義; Progressivism)는 사회의 합법칙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인간의 힘으로 변화·발전시키려는 모든 시도와 과정을 말한다. 따라서, 진보는 공유, 노동, 평등, 협력, 인권, 민주주의에 민감하고,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와 공동체를 중요시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첨언해두어야 할 점은, 보수와 진보는 절대적인 경계가 존재하는 추상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이고 자율적인 실체 개념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봉건제하의 신흥 시민세력은 진보적이지만, 이들은 자본주의가 성립하자마자 가장 반동적이고 보수적인 자본가가 된다. “모든 유기체는 환경에 적응하자마자 보수적이 된다”는 트로츠키(Leon Trotsky)의 지적처럼, 모든 종교는 초기에는 가난하고 약한 자들과 함께 진보적이지만, 사회적인 정통성을 갖자마자 지배층과 결탁하여 지배세력을 변호해주는 보수 이데올로기로 전락한다. 유대교에 대한 가톨릭이 그러하였고, 가톨릭에 대한 개신교의 보수화가 그러하였으며, 오늘날 이단이라 이름 붙여진 소수 종교에 대한 개신교의 데마고그(Demagogy: 선동)가 그러한 셈이다. 이단(異端, Heterodoxy)은 정통(正統, Orthodoxy)의 에피고넨(Epigone, 亞流, 아류)인 것이지, 이단은 정통의 외부의 것도 아니고, 창조된 것도 아니다. 이른바, 정통은 진보에서 보수로 이행해 간 현재의 기득권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이단이란, 새로움의 다른 이름이다. 변증법적인 현실 앞에서 절대적인 진보도 절대적인 보수도 존재할 수 없다. 단지, 현실의 모순을 깨부수고 나아가려는 노력만이 진보의 생명력을 추동할 뿐이다.

 

보수의 가면을 쓴 부패 수구(守舊)

해방 후 한국 근대의 보수는 매우 기형화된 정치구조속에서 괴물 같은 존재로 등장하였다. 일제가 압제한 36년의 시간, 그리고 곧장 이어인 좌우대립과 한국전쟁은 제대로 된 시민을 배태해 내기 어려운 시간이었고 민족사적으로도 척박한 환경이었다. 한국 수구의 탄생은 이러한 배경 하에서 극우 반공주의에 기반을 둔 극단적으로 기형화된 정치풍토아래 보수가 제대로 성장할 수 없는 한계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진보/보수의 구분은 왜곡되어 있다. 수구반동세력은 일제통치와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특수성을 기회로 삼아 청산되어야 할 친일·친미·부패·독재라는 자신들의 본질을 진보/보수 구도로 왜곡·대립시켜 자신들의 정체를 형해 화시켰다. 이러한 구도 속에 수구는 자신을 슬그머니 보수로 참칭하였다. 수구는 보수로 옷을 갈아입고 현실에 비판적인 세력을 좌파, 빨갱이, 종친초(종북, 친북, 촛불)라는 마타도어(Matador)로 비난한다. 수구는 보수 꼴통, 가스통 할배, 아스팔트 우파, 태극기, 선글라스, 유신노인, 꼰대, 일베충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아가면서도 자신을 보수로 위장한다. 수구세력에게 보수라는 가면은 차라리 자랑스러운 훈장 같은 것이었다.

그러하기에, 보수/진보라는 구도 자체가 모순이다. 수구가 자신의 반대세력을 좌파라 칭하며 비난하는 것은, 실은 수구가 우파를 자임하며 자신들을 비난하는 상식적인 시민을 좌/우의 프레임으로 가둔 것이다. “꼴통” 운운하며 비난하는 상식적인 시민들의 보수에 대한 비난은, 정확하게 말한다면 수구를 향한 것이다.

 

수구는 반공 프레임으로 보수에 기생한 친일세력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보수라 불러왔던 보수의 정체는 무엇일까? 한국에서 보수가 있었던가?

역사적으로 일제에 빌붙어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친일세력은 해방이 되자, 미국의 반공정책에 편승하여 독립운동 진영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하면서 친일의 죄과를 친미에 기대어 얼버무렸다. 친일세력은 해방 후에도 군부, 경찰, 행정관료, 사법부, 금융계, 산업계에 그대로 주저앉아 해방조선의 통치권을 움켜잡고 미(美)군정의 분견대로 맹렬히 짖어대었다. 이런 정치적 혼돈속에서, 조선내부에는 정치적 기반이 전무하였던 반공주의자 이승만이 미국의 지지로 대통령이 되어 친일세력의 앞잡이이자 얼굴마담이 되어 준 것은 역사의 필연이자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1945년부터 분단이 확정되던 1948년까지의 해방공간은 좌파와 우파가 대립하였던 시기가 아니고, 친일·친미 수구세력이 반공을 내세우며 민족주의·민주주의 세력을 탄압한 이데올로기적 이중 억압 상태였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로써, 수구는 반민족·친일 프레임을 반공·친미 프레임으로 교묘하게 대체하였고, 이러한 프레임은 한국전쟁과 분단의 배경 속에 남한 정치사에 자연스레 스며들게 되었다. 이러한 프레임 설정에 성공한 수구는 자신들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을 “빨갱이·좌파”라는 한마디로 제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중 억압의 혼란 상태에서 1950년 한국전쟁 발발은 친일·친미·수구세력에게 본격적인 정당성을 부여하여 준 셈이다.

반민족, 반민주, 반시민적인 친일, 친미, 양민학살, 침략, 군부, 독재의 편에서 산업역군, 경제부흥 타령만을 하는 세력은 보수라고 스스로를 참칭할 뿐이지, 진정 보수라고 할 수 있을까? 수구, 반동의 문제를 보수, 우파로 혼동한 것이 바로 오늘날의 비극의 출발이었던 셈이다.

 

‘보수정당’이라 쓰고, ‘수구 친일반민주세력’이라 읽는다.

혹자(或者)들은 1990년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민주공화당이 민주자유당으로 3당합당한 것을 한국보수의 형성과 출발이라고 주장한다. 전두환의 4·13호헌, 87년 6월 민주항쟁, 7·8·9노동자 대투쟁으로 인해 조성된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을 뒤엎고자, 집권당이던 민정당이 통민당, 공화당과 야합하여 만들어진 민자당의 탄생이 비로소 현대정치사의 보수 형성의 계기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식민지 조선의 경제발전은 일본의 은덕(恩德)”이라고 말하는 친일의 논리만큼이나 부당한 것이다. 3당 합당의 주역인 민정당은 전두환·노태우의 쿠데타 군부집단일 뿐이며, 공화당은 충청도 지역주의에 유신독재의 아우라(Aura: )를 덧입힌 박정희의 잔재일 뿐이다.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이 유신반대 운동을 지속해 온 야당의 분파로서 민주자유당과 결합한 것을 두고 ‘보수’의 정당성을 운운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영삼과 통일민주당은 민주화세력의 일부이기는 하되, 부산·경남이라는 지역적인 색채를 탈각하지 못하였고, 결정적으로는 민주화세력이 미분화된 상태에서 파쇼로 기어들어간 반(反)유신야당의 파편인 셈이었다.

왜 김영삼은 굳이 기를 쓰고 노태우의 민정당과 합당하고자 했던 것일까. 집권당 민정당으로서는 쿠데타세력이라는 딱지와 광주학살의 상흔(傷痕)은 떨쳐내고 싶은 멍에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민정당은 호남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평화민주당과 합당을 시도함으로써 영남과 호남의 억지춘향 화합을 만들어내고자 하였다. 이러한 야합의 시도에 김대중의 평민당 역시나 정치적 유불리를 저울질 하며 시속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러한 정황들이 여차저차 엎어지고 뒤집어지면서 민정당, 통민당, 공화당의 3당 합당이라는 한국정치사의 또 다른 비극이 배태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 정치는 2017년 박근혜 탄핵까지 적어도 30여년은 퇴보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민자당으로의 3당 합당은 당시 야2당이 보수정당이 아니라, 쿠데타 세력과 끈을 잡으려고 시도한 파쇼의 길동무였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결국, 소부르조아지 세력의 형식적 민주주의가 얼마나 유약하고 치졸한 것인가 하는, 그 본색을 보여준 셈이다. 따라서, 민자당에 보수라는 명칭을 부여해주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옳지 않다.

 

수구세력의 정체는 친일, 친미, 반공, 개신교, 독재 세력

한국 수구세력의 원류는 무엇일까. 크게 친일자본가 및 친일기생세력, 둘째, 반공친미분단 및 기생세력, 세째, 독재세력 등 3가지로 대별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일제치하 친일자본가 세력이다. 친일자본가 세력은 현재도 재벌이라는 지탄을 받아가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삼성(이병철), 두산(박승직), 삼양(김연수), 효성(조홍제), 코오롱(이원만), 금호(박인천), 대림(이재준), 한화(김종희), SK(최종건), 삼호(정재호), 한진해운(김용주) 같은 대기업과 친일 지주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언론(조선, 중앙, 동아 등)으로는 기득권을 유지·재생산하고, 사학재단을 꾸려 친일흔적을 육영사업으로 분칠한다. 그 대표적인 사학은 광신고(화신 박흥식), 고려대(동아일보 김성수), 중앙대(두산 박승직), 성균관대(삼성 이병철, 이건희), 영남대(박정희, 박근혜), 인천대(백선엽), 상명대(배상명) 외에도 부지기수이다. 친일 기생세력은 일제치하 군인, 경찰, 행정관료, 사법부의 일부로 현재까지 고위층에 남아있거나 선대의 유지(遺志?)를 착실히 이어가고 있다.

둘째 반공·친미세력은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북한에서 월남한 개신교도, 한국전쟁 참전자이자 피해자, 베트남전 참전자와 수혜자, 1960~70년대 압축적 성장을 체험한 개발독재기의 청·장년층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이익이 우리의 이익이며, 미국의 안전이 우리의 안전”이라는 전직 국회의원 송영선의 거침없는 부르짖음은 이들을 의사를 명확히 대변하고 있다.

셋째, 분단독재세력은 월남한 실향민, 개발독재기의 관료, 군부·경찰·행정부 등 독재 및 통치기관의 하수인, 경제적 수혜를 누리는 중층이상의 직장인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수구세력의 지배전략은 프레임 조작의 승리

이상 3개의 수구세력은 수적으로 약세이고, 명분측면에서 매우 부당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수구세력이 한국의 주류사회를 구성하고 한국을 지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프레임 조작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프레임 조작은 어중간한 대중을 자신의 구도 속에 포박(捕縛)하는 것이다.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 처럼, 인질범의 범죄의도를 인질이 자기 것으로 내면화하여 자신도 인질범과 같은 신념을 가지게 되고, 이로 인해 인질범과 의식의 일체화를 이루어 행동의 통일까지 일체화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수구세력은 사회적 약자들을 포섭하여 수구지배계층의 이익이 사회적 약자들의 이익이 될 것으로 착각하는 집단적 환각을 유포하는 것이다.

이러한 프레임 조작의 대상은, 지역적으로는 농어촌, 지방 소도시, 지리적으로는 대구·경북을 위시한 영남권, 기호지방의 농촌, 강원도 및 경기이북의 접경지역을 고루 포함하고 있다. 연령적으로는 전전세대, 전후 개발독재기의 청·장년세대(현재 60대 이상), 계층적으로는 서민, 노동자, 도시비공식 부분, 소수자, 교육수준으로는 고졸이하 계층을 둘 수 있다. 수구는 이러한 사회적 약자를 자신들의 수구 이데올로기로 포섭하여 배후 지지 세력으로 포박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데올로기적 포박의 대표적 성공사례는, 박근혜를 탄핵을 반대하는 일부 군인복장의 고령자들이 미국의 성조기를 들고 탄핵을 규탄하는 것으로, 일제 강점기 친일세력이 학병참여, 내선일체를 주장하는 시대착오적 행위를 취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3개의 수구세력은 동전의 앞뒷면 마냥 서로 일체를 이룬 채 반동의 한국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여 수구세력을 계층적으로 분류해보자. 간단하게 표의적으로 도식화하면, 집단적으로는 참전군인, 실향민, 보수 개신교, 대구경북, 반공 등의 기득권 수구세력과 사회적 약자계층의 결합이라 할 것이다.

 

수구세력의 정점은 박정희

한국 수구세력의 정점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은 박정희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의 개인사는 실로 한 인간에게서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인간군상의 측면들이 입체적으로 복합되어 있다. 역사 속에 이러한 인물도 참으로 드물 것이다. 박정희는 대구 인근의 구미 상모동의 궁벽한 빈농가정에서 출생, 큰형의 영향을 받아 한때 민족의식에 눈을 떳고, 대구사범 졸업 후 훈도로 근무, 보국충정(保國忠正) 혈서를 쓰고 만주육사와 일제육사 졸업, 일제 장교 복무, 해방 후 남로당 활동, 군사 쿠데타, 개발독재로 이루어진 드라마틱하되 반민족·반민주의 좌충우돌씩 행로였다. 박정희에 유래한 한국의 수구는 이후 여러 유형의 폭압적 통치 권력을 재생산했다. 쿠데타 군사독재 세력으로 전두환 노태우, 폭압적 개발독재 세력으로 이명박, 부패한 유신독재 세력으로 박근혜를 불러 들였다. 실로 한국의 현대사의 비극은 수구 박정희의 존망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것이다.

 

보수의 자기정체성 확립이 절박하다

한국보수는 거듭 새롭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 보수를 참칭하는 자유한국당은 애초 반민주·반민족 수구세력이 지배집단으로 인정받기 위해 분칠을 한 요즘 표현으로 성형괴물인 셈이다. 이를 보수로 운운하는 것은 감히 언어도단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보수가 성장하려면,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명박-박근혜로 연결되는 수구의 아우라를 벗어 던져야 한다. 수구가 보수를 참칭한 결과, 보수는 제대로 성장하지도 못한 채 수구의 프레임에 갇혔다. 부정부패, 치부, 권력사유화, 정치적 무능, 꼰대라는 비판은 오로지 수구가 뒤집어써야 할 욕임에도, 보수의 이름으로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의 정치적 자폐(自閉)인 셈이다. 수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 단계 이명박근혜를 계승하는 자유한국당과 수꼴의 꼰대지기 ○감탱이로 이어지는 수구꼴통의 역사는 이제 조종(弔鐘)을 울리게 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현 정치지형에서 보수의 주체는 누구여야 하는가? 더불어민주당이 발전적으로 분화되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은 탄핵정국에서 박근혜와 자유한국당에 대한 심판인 것이지, 민주당 정책에 대한 지지라고 단정할 수 없다. 즉, 수구에 대한 심판이었지 보수나 진보를 지지한 것이 아니었다. 더불어민주당에는 신자유주의 시장 세력과 자본주의에 문제의식을 가진 중도개혁세력이 한데 뒤섞여 공존하고 있다. 정책적으로는 시장과 복지라는 양립하기 곤란한 두 개의 스펙트럼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다. 따라서, 더불어민주당은 발전적인 분화와 해소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발전·발현시켜야 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해소는 한국의 건강한 보수 세력이 뿌리내리게 하는 중요한 자양분이자 디딤돌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역사의 전진을 위해 보수의 세력화가 요청된다.

이제 한국의 정치는 과거 수구의 족쇄를 털어내고 보수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여야 할 때이다. 최근 박근혜의 탄핵에서 보듯, 좌우를 뛰어넘어 시민들의 최소한의 민주주의 질서에 대한 의지와 각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우리사회가 1987년 이후의 민주화에 대한 합의, 그리고 이명박근혜로 이어지는 수구반동으로의 회귀 속에서 깨달은 귀중한 교훈이었다. 그러하기에, 제대로 된 보수가 세워져야만 올바른 진보가 바로 설 수 있다. 서민과 노동자 대중이 함께 누려야 할 연대와 통일의 공동체 세상을 앞당기기 위해서라도 보수의 새 출발이 더욱 요청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