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나경원은 한국 보수정치의 현주소

반민특위? 반문특위? 토착왜구의 언어유희!

2019-04-04     연합매일신문
나경원

 

대한민국 최대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현직 원내대표 나경원. 한국 정치판에 흔하지 않은 여성의원으로서, 빼어난 용모는 언제나 화제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사법연수원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사법부 판사를 했다. 여기에 다운증후군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라는 따스한 이미지를 더하면 그녀는 다재다능하고 절대완벽한 사람이다. 이런 나경원 의원은 이미 국회 4선의 중진 의원이다. 남편도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졸업한 수재로 현직 판사이다. 부친은 유명한 홍신학원 사주이다.

여성 정치인 중 정치9단급 생존 능력

박근혜 전직 대통령을 제외한다면, 이렇게 세간의 주목을 받아본 여성정치인은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 정치인 중 나경원 의원과 함께 잠깐 오버랩되는 전여옥, 송영선, 조윤선 의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적도 아군도 알아보기 힘든 정글같은 정치판에서, 정치적 운신의 생존 캐퍼시티(능력)로 보자면 나경원 의원은 단연코 정치 9단이자, 이미 정치의 신(神)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여옥 전(前)의원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으로 권력핵심부의 문턱까지 갔지만, “이대 나온 여자”의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빈껍데기 박근혜의 실상을 알고 나서는 정치적 반대편에 서게 된다. 박근혜의 당선을 막기 위해 대선 막바지까지 동분서주했지만, 결국 대세는 전여옥의 편이 아니었다. 그 후 명줄을 보전하기 위해 한 동안 은인자중하며 숨어지내던 전여옥은 탄핵 이후 잠깐 다시 언론의 스포트 라이트를 받으며 복귀하였지만, 이미 흘러간 물레방아 물이었던 셈이다. 대세를 읽어내는데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주장을 숨기지 않고 피력하는 강단있는 지조는 보인 셈이니, 실패한 정치인이되 누추한 정치꾼이라는 평가는 면할 만 하다.

송영선 의원은 지방국립대를 나와 미국 하와이 대학에서 석박사를 하고, 줄곧 보수계통의 업계에서 경력을 쌓아 왔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 게이오대 연구원, 국방연구원 관련 연구 및 언론 파트에서 보수색채가 다분한 경력을 쌓아왔다. 송영선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그녀의 장렬한 대갈일성은 아직도 기억에 선연히 남는다. “미국의 이익이 우리(한국)의 이익이며, 미국의 손해가 우리의 안보저해다”고 대갈일성(大喝一聲)을 토할 때, 극우보수반공냉전우익친미세력의 실체를 확인하게 해주어 통쾌한 감이 들 정도로 시원한 발언을 하였다. 무릇 보수라면 이런 거침없는 솔직함과 기세가 있어야 할 것이다. 송영선은 화통하고, 솔직하고, 직선적이다. 그래서, 의견은 달라도 송영선의 주장을 경청한다든가, 토론을 해 볼만 할 거라는 기대감이 든다. 주장하는 알맹이는 단순할 정도로 속 빈 강정이지만, 보수 일반의 우국충정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영선 정도의 극우보수라면 대화로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조윤선 의원은 미모로 치면 한창때의 핑클 이효리에 버금갈 정도로 찬사를 받았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 졸업, 김앤장 변호사, 비례대표 의원, 한나라당 대변인, 여성가족부 장관, 정무수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소위 거물급 여성정치인이다. 비유하자면, ‘박근혜 권력’을 꿀빨던 걸그룹 아이돌 급이었으니, 비교적 젊은 나이에 한세상을 누려봤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조윤선의 불행은 시대를 잘못 만난 탓만은 아니다. 그에게 주어졌던 정치적 행운은 인과응보마냥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 왔다. 박근혜 정권말기에 장관을 하며 마지막 꿀맛을 맛보려다 블랙리스트 작성 건에 발목이 잡혀 실형을 살게 된다. ‘최순실 게이트’ 진상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검사출신 이용호 의원의 거듭된 추궁에 “예술인들 지원을 배제하는 그런 명단(문화계 블랙리스트)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고 실토했다. 결국, 조윤선은 2심에서 실형 2년 법정 구속을 받고 수감되기에 이른다. 실로, 권불십년(權不十年)도 못되는 권력의 허망함, 생(生)의 비애를 체험한다. 긴 세월흘러 조윤선의 희비애락은 후대에 어떤 의미로 회자(回咨)될런지 자못 궁금해 진다.

없는 것이 없지만, 있어야 할 것도 없는 사학재벌 가계 출신

이들에게 없는 것을 모두 다 가진 이가 나경원 원내대표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경원 의원은 개인적으로도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다. 남들이 부러워 하는 서울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판사를 하였다. 80년대에, 상당히 보수적인 사법부에서 여성 판사로서 자기 위치를 세운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경원의 재능과 적응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할 것이다.

80년대 대학교정에 최루탄이 자욱하던 시절에 그녀가 시대 문제로 고민했다는 소문 한 자락 들어본 바가 없다. 그즈음 시골출신 학생들에게 상아탑은 뼈골탑이라고 할 정도로 높은 등록금가 생활비로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도 나경원에게는 자신의 안락과 추억을 아름답게 하는 풍경화의 배경에 불과할지 모른다. 사법부의 남성 중심 보수적인 환경아래에서, 나경원은 언제나 양지를 지향했다. 나경원의 부친은 독재시대 공군장교였다. 평생 전투비행기를 몰며 자부심으로 살았지만, 별을 달지 못하고 퇴역한다. 나경원의 부친은 운이 닿아 처가로부터 학교를 인수받아 운영하게 되었고, 6개 법인 17개 학교를 소유한 학원재벌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나경원은 사학재단의 일족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나경원은 사회학적으로도, 계급적으로도, 출신성분으로도 철저히 사학재단의 이익을 수호해야 하는 학원가 재벌의 딸이었다.

주어도 없고, 자아도 없고, 정치행로도 없는

“주어가 없다.”며 당시 대통령 이명박의 BBK 연관성을 부인하던 장면은 사람의 얼굴이 이토록 두꺼울 수 있는가 싶어 지켜보는 사람이 참담할 정도였다. 서울시장 선거에 낙선하는 과정에서 미모의 아이콘은 1억원 피부과 논란으로 빛이 바랬고, 따스한 어머니 상은 자녀에 대한 특권 이미지로 전락하였다. 초선의원 시절 자위대 행사 참석으로, 드디어 ‘자위녀’, ‘국썅’이라는 친일의 딱지를 뒤집어 쓰게 된다. 최근에는 “일본 자유당을 배워야 한다” 고 주장해 나베(나경원과 일본 수상 아베의 결합어, 나경원과 친일극우 사이트 일베의 결합어)라는 비아냥을 자초하고 있다.

나경원은 동작 보궐선거에서 가까스로 회생하였지만, 곧 이어진 박근혜 탄핵정국에서 새누리당을 곧 탈당할듯한 액션을 취했다, 그러나, 탈당을 저울질 하더니 결국은 새누리당에 주저앉았다. 항간의 소문으로는 김성태 의원에게 전화하여 “원내대표 안시켜주면 (신당으로) 안가겠다”며 흐느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경원은 반기문 후보를 돕겠다며 다시 갈짓자 행보를 한다.

한 동안 정치촛점에서 벗어나 있던 나경원은, 최근 원내대표 선거에서 “나갔다 굴러온 돌” 김학용 후보를 누르고, 그렇게도 희망하던 원내대표직을 차지하였다. 이제 나경원 시대의 개막일까. 나경원은 원내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두고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며, 종북 프레임을 씌웠다. 철지난 색깔론은 흘러간 유행가 보다 더 지겨운 법이다. 하지만, 나경원은 유행가를 계속 틀어댔다. 나경원의 갈지(之)자 역사인식은 차라리 갈지(之)자 식 일관성이 있다고 할 것인가. 당내 선거에서 5.18 망언이 논란이 되자. “역사적 사실에 다양한 해석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해 다시 비난을 받았다. 나경원에게 5.18은 피해자의 아픔은 아랑곳 없는 단지 역사 해석의 문제일 뿐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선거법 개정을 주장하며 심상정 의원 등이 단식을 하자 여론에 떠밀려 비례제 개혁을 약속하며 여야 4당합의에 도장을 찍은 후, 정작 약속을 지켜야 할 시점이 되자 말장난을 거듭한다. 그리고서는, “패스트 트랙은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제1야당을 말살하는 시도”라고 하는 등 자신의 말과 행동을 손바닥 뒤집듯이 해석을 달리하고 있다. 이렇게 살면 참 편할 것이다. 일관성도, 원칙도, 삶의 자세도 필요없다. 자신이 한 말도 상황에 따라 주석을 달아 뒤집으니, 자신만의 언어로, 자신만이 만들어낸 세상에, 자신만이 갇혀 지내는 셈이다. 그러면서, 타인들에게는 왜 자신의 언어를 이해 못하냐며 비아냥 거리고 있는 꼴이다.

반민특위? 반문특위? 토착왜구의 언어유희!

최근의 ‘반민특위, 반문특위’ 언어유희는 이러한 말장난의 결정판이라고 할 것이다. 나경원은 “해방 후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이 무척 분열했던 것을 모두 기억하실 것이다.”고 말했다. 이른바, ‘토착왜구’의 자인인 셈이었다. 나경원의 망언은 일제하 독립투쟁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것이었다. 역사학자들이 공동성명을 냈고, 격노한 101세 임유철 독립운동가는 국회까지 나와서 기자회견을 했다. "왜구나 같은 나경원이라는 몰지각한 정치인이 3월 독립항쟁과 임시정부 100주년에 이완용이 환생한 듯한 막말과 행동으로 독립운동가와 후손들에게 모욕감을 주고 있다”며, 의원직 사퇴요구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비판이 빗발치자 나경원은 "내가 비판한 것은 '반민특위'가 아니라, 2019년 '반문특위'이다."라며, 국민들 국어실력을 탓하며 슬쩍 말을 돌린다. 역시 나경원이다.

역사는 기억을 두고 싸우는 정의를 향한 투쟁

이제껏 지켜 본 나경원식 정치는 동물적 생존논리는 있어도 생명이 없다. 나경원이 걸어온 정치이력은 자신의 정치세계를 펼쳐가는 경로가 아니라, 이익의 추구에서 획득된 권좌의 쟁취였던 셈이다. 정치인들에게 있어 정치철학의 빈곤은 이처럼 허망하다.

역사는 언제나 강자의 편인 듯 싶어도, 마지막에는 처절할만치 냉정함을 잃지 않고, 언제나 일하는 민중의 편에 서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극우를 넘어 정의를 앞세우며, 지난 시절들 속에 친일 친미 반공 냉전 보수 극우의 죄악을 극복해야 할 때이다. 역사는 기억을 두고 싸우는 정의를 향한 투쟁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붓’의 임무는 그래서 더욱 엄중하다. 기득권 세력에 대항하는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세상을 건설하는 일하는 노동자의 편에서, 이웃을 보듬는 자치공동체의 편에 설 때만이, 기억은 더욱 정의로와지고 역사는 바로 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