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바다에 퍼부은 기름, 주민들에게 퍼부은 것
삼성이 바다에 퍼부은 기름, 주민들에게 퍼부은 것
  • 승인 2008.01.19 13: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수첩> 죽음의 행렬 이어지는 태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 주였다. 한쪽에서는 통일부가 폐지된다고 하고 또 한쪽에서는 태안 어민들의 잇따른 자살 소식도 들렸다. 통일부야 개념 없는 인수위가 통일부 존폐 여부를 두고 장난질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폐지될 리 만무하리라 판단된다. 그럼 오늘은 태안 문제를 말해보련다.

얼마 전 기자는 절망감 속에 두 명이나 자살한 사태가 벌어진 태안의 사태를 심히 여겨 취재에 나섰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대책위원중 하나로 보이는 사람의 연락처를 알아내 통화를 시도했다. 요즘 상황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울먹이며 "자살 사건 말이에요?" 하고 되물었다. 한편으로 이 사람은 왜 울먹거릴까하다가도 자살건이야 이미 언론에서 수 없이 다뤄졌기에 "다른 것 좀 물어보려고 하는데요"라고 하자, 그는 "지금 사람이 죽어가는데 뭐가 더 중요하단 말이요!"라며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 알고보니 기자가 통화를 시도한 때가 고 지창환씨가 분신자살을 시도한 직후 병원으로 후송되는 때였다. 그는 지창환씨 곁에서 울먹이며 너무 흥분한 나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기자에게 무슨 말을 내뱉고 급박한 상황을 방증하듯 후다닥 전화를 끊어버렸다. 자살 … 또? 아, 태안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니구나, 라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이튿날 지 씨가 결국 숨을 거뒀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여기저기서, `정부나 삼성이 가만 있으면 우리라도 도울께요. 자살하지 마세요`, 눈물로 호소한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일각에서는 정부와 삼성의 합작품이라고도 한다. 옳은 소리다. 가해자와 피해 상황도 분명한데 나몰라라 손을 놓고 자원봉사자들에게만 의지하는 정부의 행태가 이런 비극을 낳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삼성에 대한 법적 태도를 분명히 하고, 또 삼성은 스스로 올바른 기업이라 여긴다면 정부와 자원봉사자들이 나서기 이전에 태안 사건을 신속히 처리했어야 했다. 그러나 삼성은 대책마련은커녕 궁핍한 태안 어민들에게 반성하는 기미조차 내비치지 않고 있다.

태안주민들은 "정부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요구하는 사안에 근접해서 만들어주겠다고 말은 하고 있는데, 아직 내놓은 게 없다"고 말한다. 노무현이나 이명박 두 사람 다 "염려하지 말라, 충분히 보상하겠다" 라고 말하지만 실행에 옮겨진 건 하나도 없고 굶어 죽고 있는 사람들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으로는 숨진 이들처럼 태안 앞바다도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숨져 버리지는 않을까. 이쯤 되면 자원봉사자들도 돌변할지 모를 일이니 말이다.  

이제 태안 주민들은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조직적인 광화문의 붉은 악마나 노동자 투쟁 현장과는 달리 태안 일대에서 체계적이지 못한 행렬을 이루며 도보로 시위를 하는 일만 여명의 태안 주민들(아이들 포함)을 바라보며 그들이 자신들의 조국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 그 거대한 배신감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시위대는 밀물떼가 되었다가 이내 썰물떼와 같이 떼를 이루어 서해바다의 석조 풍경처럼 일몰하고 있었다. 모두들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었다. 집단으로 국경을 넘어가는 풍경 같았다.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떤 두려움이 일었다. 이들이 국경을 넘지 않는다면 무엇을 택할까. 혹자의 지적처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각종 체계의 모순과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 그것에 응징하는 국민성으로 인해 언제든지 전 국민 모두가 다 들고 일어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무서운(?) 나라임에 틀림없다. 21세기 시민혁명의 이름으로 말이다. 광주가 그랬다. 노동자만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고 건강한 명분으로 순박한 주민들까지 투쟁에 참가했다는 사실은 이 개념 없는 정부가 언제든지 붕괴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반증해준다.

삼성이 태안 앞바다에 기름을 퍼부은 것은 곧 태안 주민들에게도 퍼부은 것과 의미를 같이 한다. 이대로라면 태안 주민들, 이제 불 붙일 일만 남겨두고 있다. 분노한 태안 사람들의 행렬에 참가하노라면, `차라리 무질서를 택한다` 라는 까뮈의 말이 귓가에 맴돌고, 불안한 미래는 눈 앞에서 어른거린다. 주민들이 태안 일대에 망명정부를 세우지 않는 한에 있어서는 말이다. 비겁하고 용기가 부족한 기자와 같은 사람들은 스스로 가슴속에 이미 망명정부를 세우고 그곳에 갇혀 살겠지만…. 최규재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