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두렵지 않기 위해 전단지 돌리는 건데..."
"겨울, 두렵지 않기 위해 전단지 돌리는 건데..."
  • 승인 2008.01.2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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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기획-겨울이 두려운 사람들> 거리의 전단지 배포원들

번화가를 지나다보면 전단지 뿌리는 광고업자(?)들과 마주하는 일이 허다하다. 거리 곳곳에는 청년층에서 장년층까지 다양하게 포진돼 있다.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면 광고내용이 무엇이든 누군가가 그 길목을 지키고 서 있다. 만연한 겨울이다보니 두꺼운 점퍼를 상위에 꽁꽁 묶고 얼굴만 쏙 내비치며 움츠린 모양새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내민다. 반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전단지를 뿌리는 이들도 있다. 주로 젊은 사람들이 그 몫을 하겠지만. 먼저 유동 인구가 많은 거리를 찾았다.

아르바이트라 여기고 단 며칠 몇 시간 뿌리는 배포업자들이 있는가하면 생업이라 여기고 매일같이 해가 지고 밤바람이 무섭게 몰아치는 와중에도 취객들 사이에서 전봇대 마냥 꿋꿋이 버티고 있는 배포업자들도 허다하다. 좀 걸으며 수행해 나간다면 모를까, 찬바람이 쌩쌩 부는 대로에서 별 이동없이 업무를 분담하다보니 몸이 여간 차가운 게 아닐 게다. 젊어서 고생 사서 한다지만, 어르신들에게는 여간내기가 아니다. 일당보다 병원비가 더 나오진 않을까 안쓰럽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 젊은 사람들과 비교하자면 나이든 어르신들이 업무를 원활하게 진행해나간다. 이 사람 겨드랑이 저 사람 겨드랑이 가차없이 쑤신다. 종종 지나가던 젊은 여자들은 `어머`하고 화들짝 놀라기도 하고 젊은 남자들은 무표정하게 어르신을 쳐다보기도 한다. 여기서 나이든 어르신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아줌마와 할머니 사이의 연령대에서 할머니라 불리는 연령대까지…. 그러고 보면 나이든 한국 남성들은 굶지 않는 한 전단지를 뿌리는 광고업엔 인색한 듯 하다. 짐작이라면 짐작이랄까.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해` 라고 반문하며 그 이상한 자존감은 지켜야 한다고 우길 것 같은 짐작. 그나저나 일당은 선택제다. 장당 30원과 시간당 5000원,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단다.

"몇 시간이나 일하세요?"
"하루 6시간. 여기 광고지에 나오는 가게는 밥도 팔고 술도 파는 곳이거든. 2시부터 9시까지 돌려. 저녁시간대 바로 직전에 식사를 먼저하고 다시 길거리로 나오는 거지."

"장당 30원, 시간당 5000원, 어느 게 낫나요?"
"시간제가 낫지. 장당 30원을 택하면 1시간 동안 200장 가까이 돌려야하잖아. 여기가 아무리 번화가라도 낮엔 한산하단 말이지."

"그럼 저녁에는요? 저녁에도 시간제에요?"
"물론 저녁에 붐비니 장당 30원 택하는 게 맞는 얘기지만, 내 마음대로 그게 되나. 낮엔 시간제하고 밤엔 장당 30원으로 바꾸는 건 사장이 허락지 않아."

"힘 들지 않으세요?"
"젊은 사람들에 비하면 몸이 굼뜨는 것 같지만, 그래도 우리가 더 빨라. 왜냐하면 젊은 사람들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전단지를 받는 사람들은 걔들 거보다 우리처럼 나이든 사람 거 받는 경우가 많거든. 또 나이든 사람이 비록 말수는 적지만 더 싹싹하잖아. 하긴 전단지 뿌리는데 입이 무슨 소용있누. 젊은 사람들은 체력은 좋지만 정신력이 우릴 못따라와."

전단지 아르바이트가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쳐다보기만 해도 그렇다. 지구력과 체력을 요하는, 그만큼 수련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수행할 수 있는 작업같게만 느껴진다. 

문제는 따분함이라고 한다. 아줌마와 할머니 사이의 연령대인 정모씨의 얘기로 이어진다.
"낮에 경우에 말이지. 거리에 사람들도 별로 없잖아. 물론 버스나 지하철 몇 번 서면 갑자기 팍팍 몰려오는데, 순간 거리가 텅 빈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어. 그때 젊은 사람들은 아마 견디기 힘들 거야. 우리야 나이 들어서 업주들도 이해해. 거리에 사람도 없고, 그러다 지겨워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이리저리 빠져나가거든. 건너편 블록에 있는 비슷한 연배들끼리 모여서 수다도 떨고 노점상가서 다리 주무르며 오뎅국물만 후루룩 마시고 그런 거지. 업주도 우리가 나이가 찼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봐주는 건데 젊은애들이 그러면 가차없어. 젊은애들은 일은 열심히 하는 것 같아도 별 수확도 없으니 업주들은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는 거지. 깔깔."

기자는 발길을 옮겨 근처 아파트 단지로 이동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사내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기자가 다가가자 "아저씨 저 바빠요"하고 아파트 한쪽 통로로 사라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것 같았다. 아파트 한 채, 4개의 통로를 20분만에 주파했다. 사내를 잡기 위해선 비장의 카드를 꺼내야겠다고 여겼다. 

"야 너 고등학생이지?"
"네."

"그럼 방학인가?"
"아뇨, 졸업반이에요."

졸업반이라 다행이다. 현 사회의 평균적 가치관과 졸업문화를 상기하며 기자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며 카드가 비장하지 않아도, 하여 양심의 가책을 덜어도 된다고 정당화, 그리고 위안했다. 유혹하는 담배, 그러나 사내는 "이게 뭐예요? 장미? 아직도 이런 게 나오나요. 전 장미는 안펴요"라며 등을 돌린다.

"한대 잡숴봐. 맛있어."

사내는 뒷걸음칠 치는 듯 하다가 이내 불을 받는다. 사내는 연기를 크게 한번 내뿜으며 입을 열었다.

"하루에 벌 수 있는 돈은 한계가 있어요. 아파트는 체력적으로 계단을 계속 내려오는 일이기 때문에 다리 근육이 알이 배기는 일이 생깁니다. 하지만 이건 4∼5일만 참고 하시면 저절로 근육이 풀리며… 그때부터는 일이 아주 수월해져요. 물론 문제는 따분함입니다. 아파트 계단만 계속 내려오고 전단지 붙이고 이렇게 반복되는 일로 따분함이 많이 생기죠. 그로 인해 일 하고 싶은 의욕 마저 상실하게 되는 게 문제예요. 하지만 그만큼 수입은 커져가요.
솔직히 전단지만큼 아르바이트가 쉬운 일은 없습니다. 시간 구애 안 받고 하루 3∼5시간만 5∼6만원 생기니까 이런 아르바이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예요. 하지만 요즘 힘 안드는 일이 어디 있나요. 솔직히 이건 고생도 아닙니다. 그냥 운동한다 생각하고 일하면 더욱더 재미있고 돈 버는 재미가 붙습니다. 주택가 같은 경우야 일은 조금 더 힘들지만 1000부 정도 돌리는 시간이 아무리 잘하는 사람이 한다 해도 3시간 정도 걸립니다. 장당 30원씩 잡으면 3시간에 1000부, 3만원 정도 돼요. 하지만 아파트 같은 경우는 한 단지에 들어가는 부수만 1000∼2000장 사이예요. 조금만 빨리 하면 1000장 1시간30분∼2시간 사이 입니다. 5시간 기준으로 약 2000∼2500 장을 돌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장당 30원만 잡아도 6만원∼7만5000원 입니다. 한번 도전해 해보세요."

"이 형도 안 해 본 게 없단다."

"길거리서 전단지 돌리는 분들이 수동적 업무라면, 제 경우는 능동적 업무겠죠. 그래서 여름보다 오히려 겨울이 낫다고 판단돼요. 여름엔 금방 지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넌 겨울이 별로 안 두려운 사람이구나."
"안 두렵기 위해서 전단지를 돌리는 게 아니고요?"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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