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한 보수언론과 북한 대중문화
[칼럼] 남한 보수언론과 북한 대중문화
  • 연합매일신문
  • 승인 2021.12.0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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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

1. 애꾸눈 임금의 초상화와 남한 언론에 그려진 북한

옛날에 한 임금이 불행하게 한 쪽 눈이 멀었다. 사진이 없던 시절이라 자신의 모습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했다. 초상화를 가장 잘 그린다는 화가를 불러 자신의 얼굴을 그리도록 했다. 화가는 큰 상을 기대하며 임금 얼굴을 정성껏 그렸다. 아무리 솜씨 좋게 잘 그려진 그림이라도 임금에게는 한 쪽 눈이 감겨진 자신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일 리 없었다. 임금은 자격지심이 생겨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흉하냐며 화가를 죽여버렸다.

두 번째 화가가 불려왔다. 임금의 얼굴을 곧이곧대로 그렸던 선배 화가가 그 때문에 죽었다는 소문을 들은 터라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두 눈이 멀쩡한 것처럼 그렸다. 안면마비로 입이 비뚤어지고 왼쪽 눈이 찌그러진 나처럼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사람 얼굴이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기에, 멀쩡한 눈을 먼저 그린 뒤 그 눈을 다른 쪽에 포개 놓은 듯 그린 것이다. 임금은 이번에도 만족할 수 없었다. 언뜻 보기에는 아름다웠지만 자신의 참모습이 아니지 않은가. 화가는 거짓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

세 번째 화가가 불려왔다. 두 선배 화가들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한 사람은 곧이곧대로 그림으로써 흉하게 묘사했다고 죽었고, 다른 사람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렸지만 거짓으로 묘사했다고 죽었으니 어떻게 그려야 했을까? 여러분도 여기서 고민해보기 바란다. 자신이 화가라면 어떻게 그릴 것인가.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이 달린 문제다.

그 화가는 궁리 끝에 얼굴 옆모습을 그렸다. 감긴 눈이 보이지 않도록 멀쩡한 눈이 있는 쪽을. 임금 얼굴을 정면 아닌 측면에서 그림으로써, 거짓 묘사하지 않고도 흉하지 않게 보이는 초상화를 임금에게 바쳤다. 목숨을 잃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높은 벼슬과 큰 상금까지 받을 수 있었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슬기롭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면 교활하다고 할까.

내가 이렇게 어설프게 꾸며본 옛날이야기는 북한에 대한 남한의 인식과 관련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교육과 언론을 통해 애꾸눈 임금의 초상화 같이 묘사되는 남북한을 보아왔다. 남한에 대해서는 멀쩡한 눈 또는 밝은 쪽만 보아야했다. 부정적 측면을 들추어내면 반국가적이라고 매도되기 쉬웠다. 북한에 대해서는 감긴 눈 또는 어두운 곳만 볼 수 있었다. 긍정적 모습을 찾으면 ‘친북좌빨’이라며 처벌받기 일쑤였다.

첫 번째 화가의 임금 초상화처럼 북한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싶어도 독재자의 총칼이 무서워 가짜 그림을 그리는 사례도 많았을 테고, 교육자들이나 언론인들 스스로 북한이 싫고 공산주의를 증오해서 북한 사람들을 머리에 뿔 달린 사람처럼 터무니없이 묘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먹고 살기 힘들고 이른바 민도가 낮았을 때는, 두 번째 화가처럼 있는 것을 없다 하고 없는 일을 있는 것처럼 꾸며대도 순진하게 믿고 따르는 때가 많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바깥 세계와의 교류가 늘어나자 양심적 지식인들이나 깨친 민중을 속이기 어렵게 되었다. 언론도 잔머리를 굴려야 했다. 교활해진 것이다. 첫 번째 화가처럼 남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니 독재정권의 탄압이 두려웠을 테고, 두 번째 화가처럼 없는 것도 있는 것같이 날조해 거짓말하자니 깨친 사람들의 눈이 꺼림칙했을 것이다. 세 번째 화가처럼 독재자의 총칼을 피하면서도 민중의 눈을 교묘하게 속이는 꾀를 부렸다.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체하면서, 남한에 대해서 부정적이거나 북한에 대해서 긍정적인 모습은 감추고, 남한에는 유리하고 북한엔 불리한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어 보도하게 되었단 말이다.

1980년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부터 박근혜 정권까지 <조선일보>를 비롯한 극우수구 신문들이 권력에 아부하며 급성장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러한 반공반북 언론의 왜곡보도를 통해 독자들은 남한이나 미국 또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서는 긍정적 측면만 보아왔고, 북한이나 중국 또는 사회주의 체제에 대해서는 부정적 측면만 볼 수밖에 없었다.

한편, 예나 지금이나 남한 정권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고 가치로 삼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면서도 가장 기본적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해왔다.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을 크게 침해한다. 국민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바람직하다거나 북한이 좋다는 등의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 북한 말과 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북한 신문이나 방송, 소설이나 시 등은 극히 제한적으로 볼 수 있다. 북한 노래나 그림, 연극이나 영화 등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내가 겪은 사례 몇 가지 소개한다.

1) 국호에 대해

남북 양쪽 정식 국호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약식은 한국과 조선이다. 북한과 남조선은 상대를 정상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호칭이지만 편의상 널리 쓰인다. 북한이라는 호칭을 쓰려면 남조선이란 호칭을 받아들여야 하고, 남조선이란 호칭이 싫으면 북한이라는 호칭을 쓰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1997년 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른바 ‘남조선명함 파동’이 터졌다. 이석현 <새정치 국민회의> 의원이 미국 로스앤젤레스 동포에게 돌린 자신의 명함에 국적을 ‘한국 (남조선)’으로 표기한 걸 문제 삼았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극우수구 신문들은 이 의원이 “국체를 부정했다”며 온갖 색깔공세를 퍼부었고, 이를 견디다 못한 그는 기자회견을 열어 눈물을 터뜨리며 <새정치 국민회의> 탈당 의사를 밝혔다.

그가 명함에 한국이란 말을 빼고 남조선만 써넣었다면 국체를 부정했노라고 시비 걸만했다. 외국인용 명함에 남한 사람들이 쓰는 ‘한국’으로 먼저 표기하고 옆에 괄호를 달아 북한 사람들이 쓰는 ‘남조선’을 조그맣게 덧붙여 한자로 ‘韓國 (南朝鮮) 國會議員’이라고 쓴 게 국체를 부정한 일이었는가. 명함에 주소와 이름을 영어로 쓴 가운데, 서울을 일어로 표기하고 괄호 안에 중국인들이 쓰는 한성 (漢城)이라고 적어 놓은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1995년 8월 해방 50주년을 맞아, <전국 언론노동조합 연맹>, <한국 기자협회>, <한국 방송프로듀서 연합> 등 남쪽 주요 언론단체들이 ‘통일 언론실천 공동선언문’을 발표하면서, “나누어진 남과 북의 현실을 인정하며, 상호존중과 평화통일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상대방의 국명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원칙 아래 편의상 한국과 조선이라는 약칭으로 쓰기로 제안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쪽을 조선이라고 표현하는 남쪽 언론은 거의 없다. 아마 유일한 예외라면 <전국 언론노동조합 연맹>이 펴내던 주간지 <미디어 오늘>에서 볼 수 있던 ‘조선 (북한)’이었을 것이다.

2) 김일성에 대해

김일성은 1920년대 만주에서 중학교 다닐 때부터 독립운동에 힘쓰며 1930년대에 목숨 걸고 항일 유격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냉전시대 남한 교육과 언론은 그를 ‘가짜 (항일독립운동가)’로 매도했다.

1994년 <내외통신>이 “창립 20주년을 맞아 북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일반적인 상식과 주민들의 생활모습” 등을 살펴보는 ≪북한조감≫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국가정보원 전신인 당시 안전기획부가 운영하던 <내외통신>은 북한에 관한 모든 정보를 취합하여 언론사에 건네다 1999년 <연합뉴스>에 합병되었다. 1994년엔 개별 언론사가 북한에 관해 독자적으로 취재하지 못하고 이 통신사를 통해 정보를 전달받았다.

≪북한조감≫ 부록에 ‘북한주요인물 30인’이 수록되었다. 김일성을 소개하는 데엔 1936년 조국광복회 조직, 1937년 6월 함남 보천보 습격, 1937년 9월 함남 증평리 습격 등의 약력이 담겨 있다. 이와 함께 오진우는 1935년 ‘항일유격대’에 참가했고, 박성철은 1934년 ‘항일유격대 대원’이었으며, 최광은 해방 전 ‘김일성유격대 대원’이었다고 소개하는 등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써진 조그만 쪽지가 끼워진 채 배포되었다. “북한 주요인물 30인 약력 가운데 항일투쟁활동 등 일부 내용은 북한측 주장임.” 이에 나는 다음과 같이 공개적으로 안기부를 비판했다. 27년이 지나도록 안기부/국정원 반응은 받지 못하고 있다.

“이 쪽지는 그 동안 안기부가 얼마나 무능했거나 횡포를 일삼았는지 짐작케 한다. 첫째, 막대한 국가예산을 쓰면서 북한 정보를 독점해온 안기부가 북한을 반세기 동안이나 통치해온 김일성의 과거 행적을 독자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북한측 주장’대로 옮기기만 했다면, 안기부 창설 이래 30여년이 지나도록 무슨 일을 했기에 그처럼 기본적인 북한 정보도 확인하지 못했는가. 둘째, 일반인들은 물론 북한에 관해 연구하는 학자들도 사실로 확인된 북한의 주장조차 소개하거나 알리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기 쉬운데, 안기부는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북한의 주장을 널리 공표해도 친북용공으로 낙인찍히거나 처벌받지 않는다는 말인가.”

<내외통신>이 안기부의 무능이나 횡포를 드러내면서까지 그 궁색한 내용의 쪽지를 끼워 놓은 것은 안기부의 막강한 권위와 무소불위의 힘을 뛰어 넘는 극우수구 언론의 억지와 압력 때문이었다. 탈냉전시대를 맞아 안기부와 <내외통신>이 김일성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밝히고자 했는데, ≪북한조감≫을 미리 받아본 극우 신문사가 거세게 항의를 했단다. 약 50년 동안 온 국민이 교육과 언론을 통해 김일성이 ‘가짜’ 독립운동가였다고 배우고 들어왔는데, 냉전이 끝났다고 안기부와 <내외통신>마저 김일성이 ‘진짜’라고 실토하면 당시까지 ‘김일성 가짜설’을 퍼뜨려온 언론은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시대가 바뀌고 진실이 밝혀지면 사과하고 반성하는 게 아니라, 억지와 위협으로 끝까지 진실을 가리려고 발버둥치는 게 극우수구 언론의 참모습이다.

3) 북한 무기 수출에 대해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1986년 1월 28일 <동아일보>가 ‘북한 무기 3억 달러 판매’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는 ‘무기 시장의 새 판매상’이란 제하의 기사에서 북한이 지난 73년과 83년 사이 제 3세계 국가들에 20억 달러 상당의 각종 무기를 판매했다고 말했다. 이 주간지는 무기를 판매하는 주요 제 3세계 국가들로 중공, 북한, 이스라엘, 브라질, 이집트, 파키스탄, 남아공화국, 인도 및 싱가포르 등을 지적하고.....”

이 기사를 읽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아마 북한의 무기생산 및 수출실적에 놀라움을 표하며 안보에 대한 경각심을 품게 될 것이다. 나는 배신감과 분노를 느꼈다. 1986년 2월 3일자 U.S. News & World Report의 원문기사는 다음과 같았기 때문이다. ‘제3세계의 10대 무기판매 국가’를 소개하는데, 남한은 2위였다. 위 <동아일보> 기사에 9개국이 나열되어 있는데, 중공과 북한 사이에 남한을 집어넣으면 1위부터 10위까지 바른 순서가 되는 것이다. 더구나 원문기사 중에는 북한보다 남한의 무기수출 현황에 관한 내용이 훨씬 더 많을 뿐만 아니라, 남한의 전투기생산에 대한 사진까지 크게 실어놓고 있었다.

4) 북한 핵무기개발에 대해

내가 1995년 한국정치학회에서 ‘4월혁명과 미국의 개입’이란 논문을 발표하면서 1958년부터 남한에 미국 핵무기가 배치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소개했다. <중앙일보> 전문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기자들은 뉴스거리가 있으면 지구 끝까지도 날아갑니다”며 멀리 나를 찾아온 기자에게 미국 외교문서를 복사해 건네주며 남한의 핵무기 도입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그는 “와, 이거 우리신문 1면 톱뉴스감인데요”하며 흥분하다시피 했다. 나는 “내 덕분에 특종 한 번 써보세요”라고 부추겼다.

그러나 26년이 지나도록 1면 톱뉴스는커녕 맨뒷쪽 말단뉴스로도 보도되지 않았다. 북한 핵개발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는 터라 남한 핵무기 관련 기사에 신문사 간부들이 몹시 민감하게 반응하며 잘랐다는 것이었다. 남한 핵무기에 대해서는 확실한 증거를 갖고도 한사코 눈감아버리며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고, 북한 핵무기에 대해서는 두 눈 부릅뜨고 믿기 어려운 소문조차 시시콜콜 보도하는 남쪽 언론의 실상 아니겠는가.

2. 북한 대중문화

1) 언어에 대해

민족을 분류할 때 가장 기본적이고 주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가 언어다. 남한은 오래 전부터 써온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조차 북한이 즐겨 쓰면 거부한다.

‘인민’이란 사람들을 가리키는 가장 보편적 말이다. 해방 전부터 오랫동안 써왔다. 영어 people에 가장 정확하게 들어맞는 말이다. 북한에서 널리 쓴다는 이유로 남한에선 일제 냄새가 짙게 풍기는 ‘국민’을 쓰고 있다.

‘동무’란 순수하고 정겨운 우리말이다. 남한엔 ‘어깨동무 내동무’라는 말만 겨우 남아있다. 북한에서 널리 쓴다는 이유로 ‘친구’라는 얼치기 한자어를 쓰고 있다. 참고로 중국에선 ‘붕우 (朋友)’라는 단어를 흔히 쓴다.

2001년 3월 한완상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이 ‘창발성 (創發性)’이란 말을 잘 쓴다고 <한국교원단체 총연합회>가 시비 걸고 <조선일보>가 거들었다. “북한 헌법, 노동당 규약 등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는 용어가 아무런 검증 없이 교육정책의 핵심적 용어로 도입돼 교육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억지가 도를 넘었다.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창발’을 “남이 모르거나 하지 아니한 것을 처음으로 또는 새롭게 밝혀내거나 이루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교육에서 꼭 필요한 것이다.

남한에서는 국적 불명의 외래어가 넘친다. 미국인들도 모르거나 쓰지 않는 영어 같은 외래어가 많이 쓰인다. 일본말이나 일본식 언어도 수없이 많다. 이러한 터에 우리말이라도 북한에서 널리 쓰면 쓰지 말자고 억지 부리는 것 아닌가.

참고로 남한 언어에 대한 북한 평가는 아래와 같다. 첫째, 김일성은 1966년 다음과 같이 교시했다. “지금 남조선 신문 같은 것을 보면 영어나 일본말을 섞어 쓰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한자말은 중국 사람들도 쓰지 않는 것까지 망탕 쓰고 있습니다. 사실 남조선에서 쓰고 있는 말에는 한자말과 일본말, 영어를 빼버리면 우리말은 ‘을’, ‘를’과 같은 토만 남는 형편입니다.”

둘째, 평양 백과사전출판사가 1988년 펴낸 ≪조선개관≫의 평가도 비슷하다. “오늘 남조선에서는 우리말과 글이 엄중한 위기를 겪고 있다. 남조선에서는 우리말의 순수성이 점차 사라지고 잡탕말로 변하여가고 있으며 우리글은 한자와 외래어에 뒤섞이여 알아볼 수 없게 되고 있다.”

셋째, 1999년 4월 <로동신문>의 평가는 더욱 부정적이다. 남쪽에서 외래어와 한자어의 남용으로 순수한 민족어가 거의 사라져가고 있으며 이에 따라 남북 언어의 단일성마저 상실되어가고 있다고 남쪽의 언어실태를 신랄히 비판했다. “남조선에서는 지금 우리 민족어가 외래어에 질식되어 없어질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면서, 특히 거리의 간판과 상표, 영화제목 광고가 온통 외래어 투성이라고 지적하고, 신문 방송 출판물에서도 문법에 맞지 않고 뜻도 모호한 잡탕말을 망탕 쓰다보니 도무지 어느 나라 글인지 분간 못할 정도라고 혹평한 것이다.

2) 신문과 방송에 대해

일반인은 물론 북한을 연구하는 사람들조차 북한 소식을 ‘직접’ 접하기 어렵다. <로동신문>을 읽을 수도 없고, <조선중앙방송>을 보거나 들을 수도 없다. 북한이 운영하는 <우리민족끼리> 홈페이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데, 그곳에 접속하면 “불법.유해 정보 (사이트)에 대한 차단”이라는 남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안내와 경고가 떠오른다.

노무현 정부 때는 <로동신문>을 인터넷으로 읽을 수 있었다. 일본 <조선통신>을 통해서였다. 내 학생들에게 홈페이지 주소를 알려주며 화상에서만 읽고 출력하지는 말라고 했다. 신문을 인쇄하면 ‘이적 표현물 불법 소지죄’로 처벌받기 쉽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는 그 마저도 못하고 있으니 진전이나 답보가 아니라 후퇴다.

나는 조선로동당의 6쪽짜리 기관지 <로동신문>을 공개하더라도 전혀 문제없으리라고 1990년대 중반부터 주장해왔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장군’의 교시, 조선로동당의 동정 등을 선전하는 기사가 대부분이기에 일반인들은 처음 한두 번 호기심으로 읽다가 금세 싫증낼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폐쇄적이라며 남한 소식을 담은 풍선을 북쪽으로 날려 보내거나 그것을 지지 후원하는 개인과 단체가 적지 않은데, 상대적으로 개방적이라는 남한이 북한의 신문과 방송을 차단하는 것은 역설적 탄압이요 횡포다.

3) 문학과 예술에 대해

1998년 10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다. 일요일 오후 모란봉에 오르니 많은 사람들이 ‘고난의 행군’과는 다르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을밀대 근처에 한 가족이 둘러서서 노래 부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서 들어보니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였다. 1970년대 남한에서 유행했던 노래다. 얼른 사진에 담았다. 스마트폰이 없을 때라 노랫말까지 사진에 담지 못한 게 아쉬웠다. 남쪽 유행가를 북녘에서도 부른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직접 맞닥뜨리니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공개된 장소에서 ‘남조선의 퇴폐적 사랑 타령’이라니.

다음날엔 고려호텔에서 북녘 안내원들과 얼굴을 붉히며 협상을 끝내고, 남쪽 일행 두 사람만 우울한 기분으로 45층 회전 전망식당에 올랐다. 북녘 사람들 5-6명이 앉아 있는 데서 좀 떨어져 자리 잡고 점심 먹는데 근처 자동 피아노에서 귀에 익은 가락이 흘러나왔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고향의 봄>, <아침 이슬> 등이었다. 접대원을 불렀다. 우리 때문에 남쪽 노래 들려주는가 물었더니 아니라 했다.

폐쇄적 북한은 23년 전 1998년 남쪽 자본주의 노래를 공개적으로 허용했다. 개방적 남한은 23년 후 2021년까지 북녘 사회주의 노래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1991년 소련 해체 및 냉전 종식 직후 남한 대통령부터 남북 체제경쟁은 끝났다고 한 터다.

북한에서는 노래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문학과 예술 작품에 정치성이 깃들어있다. 선전선동 도구이기 때문이다. 남한에서는 선전선동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크지만, 북한에서는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 사회요소다. 조선로동당의 핵심부서 가운데 하나가 선전선동부 아닌가. 북한에겐 남한 자본주의 문화가 퇴폐적이고, 남한에겐 북한 사회주의 문화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남한 자본주의 문화를 일부라도 허용하는 북한이 폐쇄적인가, 북한 사회주의 문화를 일체 거부하는 남한이 폐쇄적인가.

3. 화해협력을 통한 평화통일의 길: 북한 문화 개방

남한 정부의 통일정책은 1989년 노태우 정부에서 처음 만들어지고 1994년 김영삼 정부에서 조금 다듬어졌다. 그리고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이다. 제1단계가 평화적으로 공존하면서 화해하고 협력하자는 것이다. 남한에서 진보와 보수가 잘못 정의되거나 부적절하게 분류되고 있는데, 이른바 ‘진보정권’이라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아니라 군사독재정권의 연장이나 다름없는 노태우-김영삼 극우보수 정권에서 만든 통일방안의 첫걸음이 평화공존 화해협력이란 말이다.

2018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15만 평양시민에게 감동적 연설을 했다. “평양시민 여러분 동포 여러분, 우리 민족은 우수합니다. 우리 민족은 강인합니다.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합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북과 남 8000만 겨레의 손을 굳게 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우리 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갑시다.”

30여년 전 ‘보수정부’가 남북 화해와 협력을 통일정책의 1단계로 설정하고, 3년 전 진보정부 대통령이 북한에 들어가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함께 살아야 한다고 외쳤으면서도, 여전히 북한 대중문화를 차단하고 있다. 어떻게 화해하고 무슨 수로 협력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엄청난 모순이요 지독한 역설이다.

1945년까지 한반도를 35년이나 강점하며 우리 언어를 빼앗고 언론을 짓밟으며 문화 말살 정책까지 자행했던 일본의 대중문화는 1998년부터 받아들이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왜색문화’라 경멸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무엇이 두려워 북한 대중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단 말인가. 이미 1990년대부터 체제경쟁은 끝났다고 큰소리까지 친 터에. 남한 경제력은 세계 10위 또는 최상위 5%에 든다. 군사력은 세계 6위 또는 최고 3%에 속한다. 문화력은 ‘강남스타일’, ‘방탄소년단’, ‘기생충’, ‘오징어게임’ 등을 통해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한다. 북한이 남한 문화를 경계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남한이 북한 문화를 차단하는 것은 편협하고 옹졸하며 어이없을 뿐이다.

* 이 글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NCCK) 언론위원회가 11월 29일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주관하는 ‘남북 교류와 평화의 전제 조건: 적대적 분단 언론에서 상생 통일의 언론으로토론회에서 북한의 대중문화 개방을 주제로 발표한 초고다.

 

출처: 이재봉의 평화세상(https://blog.daum.net/pbpm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