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란 시인(자양융합국어 대표) 작품
박미란 시인(자양융합국어 대표) 작품
  • 연합매일신문
  • 승인 2023.09.1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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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작품 - 변명, 수용(거리3), 그게 그런건가 봅니다, 이별하기, 산수유
박미란 시인(자양융합국어 대표)(사진=박미란)

변명

그때,

그대에게 기대지 못한 것은

용기가 없어서도

그대가 내마음에서 멀어져서도 아니다

모든 것들은 만남 이전에 이별이 먼저였다

그대가 가슴으로 다가서기도 전에 난 늘 이별을 생각했었다

그대와 나의 이별, 부어오를 상처가 두려워

처음부터 그대 수용하지 않았다

 

그대여, 그때

나는 이미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와 그대 상처가 두려웠다 어두웠다

나는 그대 몰래 그대 그림 하나하나씩 지우기 시작했고

나로인한 그대 상처의 얼룩, 그대 몰래 하나하나 건실히 닦아주고 있었다

하나씩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그때 나는 진정으로 떠나는 방법을 터득해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대가 눈물로 다가섰던 날부터

이별을 준비했었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또 다른 상처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그대 수용 한 번도 허락치 않았다

처음부터 그대 상처가 두려웠다

닦아주고 싶었다

 

그대여

나의 상처는

남이 그대가 되면서 시작되었다

남이 그대가 되면서 아픔으로 커져갔다

그대 상처 하나씩 닦으면서 나의 상처 키워가고 있었다

상처 하나하나 가슴 한켠으로 키우고 있었고, 차차

그대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때, 나는

떠나는 이가 남겨진 이보다 더 아프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진정 사랑을 몰랐다

늘 싸늘했었기에 그 누구도 가슴에서 수용 못하고 보냈었다

칼바람만 가슴으로 불게 했다

너무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늘 싸늘했었기에 진정 사랑이 아픔이었다는 것을

아픔은 아픔을 낳는다는 것을, 그 후의 아픔이 죄의식도 낳는다는 것을

너무나 늦게 깨닫기 시작했다

 

아니, 그대여

나는 사랑을 너무 일찍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만나기도 전에 많은 이들을 무참히 보냈다

수 많은 이들과 담벼락 많이도 쌓았다

 

그대여 그때,

그대에게 보인 칼바람은

진심이 아니었다

 

진정으로 떠난다는 것은

떠나는 이가 남겨진 이에게 추억 모두 건네고 가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이가 남겨진 이의 상처까지 가져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떠나는 것도 남겨진 것도 상처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아니, 떠나는 것이 남겨진 것보다 힘든 일인 것을 깨달았으므로

그때, 그대에게 대한

싸늘함은 진심이 아니었다

 

그대가 무정하다 했었던 나는

가슴으로 그대 수용 생각도 했었다

그대 수용하면

가슴으로 자주 세찬바람과 밤이 찾아들었다

바람 가득한 이파리가 온몸으로 울부짖고, 비는 가슴으로 떠내려 왔다

나에게 겨울은 너무나도 자주왔다

한 여름에도 가슴으로 눈이 쌓였다

늘 추웠다

늘 가슴속은 싸늘해져 갔다

 

그때,

그대에게 보인 칼바람,

그대여 진심이 아니었다

 

그대여,

그대에게 보인 칼바람은 진심이 아니었다

그대여, 용서해 달라는 말은 않으련다

나는 아직도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 잊고 살아가고 싶다

가볍게 살아가고 싶다

죄의식은 끊임없는 아픔을 낳는다

아픔으로 종일 밤이 들기 때문이다

아픔마저 수용할 만한 나는, 용기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이기적이기 때문이며, 충분히 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대여, 나는 오늘도

그 이기심으로

변명의 시를 쓴다

그때,

그대에게 보인 칼바람

진심이 아니었다

 

수용(거리3)

-기도-

그가 걸어간다

마주치는 순간마다 고개 숙이는 붉은 얼굴

그러기에 그 천연의 얼굴빛은 본 적이 없다

 

우연히

먼 발치에서 바라본 그,

그의 얼굴은

분명

노오란 햇살 같다

 

내가 먼저 발견한

먼 거리의 그는

분명, 햇살같이 둥그스름한 이지러지지 않은

포근한 얼굴을 가졌다

 

그 햇살같은 얼굴은

무언가만 바라보면

항상 붉으스름해진다.

 

가까이에서 마주친 그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멀리서 우연히 발견한 노오란 햇살같은

따스한 그의 얼굴,

가까이에선 좀처럼 볼 수 없다

 

붉은 그,

저벅저벅 내곁을 건너가지만

가슴속에는 늘,

고동치는 소리와 파도 소리가 들린다

 

붉은 산호와 푸른 바다를 늘 거니는

그의 붉은 미소속으로

초록빛 바다가 보이고

천연의 섬이 보인다

 

사뿐사뿐

붉은 그의 곁을 지나치지만

오직 그 설레임은

평온한 대지처럼 편평하고 가벼운 바람만

알듯말듯한 일렁임으로 분다

 

붉은 산호같은 그의 자리도

설레임도 아닌

깊지도

얕지도 않은

가벼운 바람이기를 기도한다

 

깊어도 두렵고

얕아서 두려운

거리,

 

그 거리를

그와 내가

걷고 싶다

 

그게 그런건가 봅니다

그게 그런가 봅니다

그가 기다려 달라고 합니다

 

먼 곳으로 가겠다 합니다

그게 말처럼 쉬운가 봅니다

그게 그는 어찌 쉬운 모양입니다

그는 그것이 짧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게 그런가 봅니다

기다릴 수 없을 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기다릴 수 없다고 한 듯 합니다

그게 나는 어찌 어렵기만 합니다

그것이 헤아릴 수 없는 긴 시간이므로

이순간 헤어짐을 생각합니다

 

그게 그런가 봅니다

그게 그는 기다린다고 보나 봅니다

기다릴 것이라 보나 봅니다

기다림이 그는 쉬운가 봅니다

그는 그게 쉬운가 봅니다

 

그게 그런가 봅니다

내가 기다릴 수 없다고 한 듯 합니다

기다리지 않겠다고 한 듯 합니다

 

내가 기다릴 수 없다고 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그 였던 것 같습니다

매정한 그 였던 것 같습니다

 

그게 그런가 봅니다

지금 이순간 시간은 멈추어 있습니다

아주 긴시간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그런가 봅니다

지금 이순간, 잠시 떨어진 이순간이 그에게는

아주 짧은 순간이라 생각 하나 봅니다

아니, 그게 그런건가 봅니다

그는 시작을 위한 잠시 간의 멈춤이라 생각 하나 봅니다

 

그게 그런건가 봅니다

나는 멈춘 이 순간

끝이라 봅니다

끝이여야 한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먼 시간이

흐른 뒤

 

그게 그런건가 봅니다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아이의 엄마가 되어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가 되어

수시로 찾아오는 건망증이 되어

그를 까마득히 잊으려나 봅니다

 

그게 그런가 봅니다

기다림이

수시로 찾아드는 잦은 그리움되어

그녀를 찾으려나 봅니다

 

이별하기

떠나는 사람은 말이없다

떠나는 길에는 말이없다

떠나는 길에는 수용도 이유도 변명도 필요없다

말없이 떠나는 거다

이별 앞에서 그 무슨 변명과 이유가 있는가

말없이 떠나는 거다

너와 내가 남남으로 잊고 사는 거다

우리는 너무나 긴 꿈을 꾸었으므로

 

우리에겐

서로를 위한

이해와 용서가

필요했었다

 

아니,

우리의 인연은

연연한 꿈과 같았으므로

우리는 기나긴 꿈을 꾸었었고

이별 또한 꿈이었다

우리의 인연은 희미하고

기억되지 않는 까마득한 하루밤 꿈이었다

 

이별 앞에 서서

견실한 뒷 모습

단 한 번의 뒷모습만 보이고 가는거다

 

그 어떤 미련도

이유도

변명도 필요 없는거다

 

아픔없는 이별이 있는가

이별 뒤에 서로에게 남은 미련으로

서로의 영혼에 입힌 상처가 아물게 할 수가 있는가

 

이별 앞에서,

말없이 떠나는거다

그 어떤 말이 필요없는 거다

 

그대 수용해도 외로웠다라든지

우리는 너무 다른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는지

그대 사랑하는 동안 사랑보다 아픈 날이 더 많았다든지

내 바램으로도 그대 노력으로도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바다를 두고 출렁대던 아픔이라든지

늘 어우러질 수 없는 그대이기에

좀처럼 가슴한켠 늘 아픔만 커져갔으므로

그 어떤 것들도 그대와 나의 공간을 채울 수 없었으므로

그것은 나만이 느끼는 불행이었으므로

그 어떤 미련을 낳는 말은 없는거다

말없이 떠나는 거다

 

그 자리 잠시 머무른 흔들림이었으므로

처음 만났던 자리에서

남남처럼

지나치는 인연처럼

차가운 아픔 감추고 돌아서는 거다

 

이별은

가벼운 손짓,

약간의 떨림,

차가운 미소 한줌 감추고

말없이 돌아서는 거다

 

나와 그대 사라진 자리에서나

흘릴 수 있는

눈물이다

 

쓸쓸한 뒷모습 감추고

빈 자리에서나

홀로 서서

흘리는 손짓이다.

 

이별은

말없이 돌아서는 거다

그 어떤 말도 필요없는 거다

 

산수유

이른 봄

노란 열꽃

 

안개처럼 뭉게뭉게 꿈 틔우듯

샛노오라니 오르던 열꽃의 기적들이

겨우내

숨죽이고

습관처럼 거세게 일어난다.

 

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가슴엔

너만 생각하면

자그맣게 틔우는

거센기억이 있다

 

좀처럼 닿지 않아

어긋댔던 지난날

노오란 출렁거림으로

늘 말 잃고

속 꽃만

송이송이

피워댔다

 

가을 가고 초겨울

내 이기심으로

우린 거칠게 헤어졌다

 

모든 것들이

홀홀히 떠나던

겨울녘을 지나

 

그 이듬해 봄

거친 일렁거림으로

거세게 일더니

열꽃 아픔으로 올랐다

 

늘 새봄엔

아픔들이 습관처럼

노오라니 피어난다

 

새봄엔

아픔들이

습관처럼

노오랗게 선다

 

새봄엔

너만

생각하면,

아픔이 노오랗게

일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