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지 않는 국가, 처벌받지 않는 책임자”
“책임지지 않는 국가, 처벌받지 않는 책임자”
  • 이승현 기자
  • 승인 2023.12.0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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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2023년 한국인권보고대회’ 개최… 윤석열 정부 1년 인권침해상황 종합 진단
조영선 민변 회장 “윤석열 정부 2기, 코로나19 이후 경제적 위기의 연장 속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가치는 더욱 흔들리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4일 ‘2023년 한국인권보고대회’가 열렸다. (사진=민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회장 조영선, 이하 민변)은 올해도 세계인권선언의 날을 기념하여 한 해 동안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 상황을 기록한 ‘2023 한국인권보고서’를 발간하고 지난 4일 ‘2023년 한국인권보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민변 대회의실과 ZOOM 및 유튜브 생중계로 동시 진행된 이번 보고대회에서 조영선 민변 회장은 “윤석열 정부 2기, 코로나19 이후 경제적 위기의 연장 속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가치는 더욱 흔들리고 있다”며 “비록 흔들림이 있더라도 우리에게는 ‘인권과 민주사회’를 향한 소명이 있기에 거친 광야에서 함께 가기를 청한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이번 보고대회는 △2023년 인권 상황 총괄 보고 △2023년 디딤돌·걸림돌 판결 발표 △집중조명1(언론의 자유 현황과 과제) △집중조명2(윤석열 정부의 ‘이념전쟁’) △현안대담으로 구성됐으며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이 지난 상황에서 사회 각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 침해 상황을 종합적으로 진단했다.

2023년 인권 상황 총괄 보고 발표를 맡은 이상희 2023년 한국인권보고대회 준비위원장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일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생명을 위협하는 구조적인 폭력 속에서 안타까운 삶들이 소리 없이 사라지는 참담한 현장이 이어지고 있지만, ‘시대의 망각을 저지하기 위해’ 인권 기록을 이어갔다”며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9년이 지났지만, 10․29. 이태원 참사나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에서 보인 정부와 책임자들의 무책임한 대응을 보면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세월호 참사의 기록도 멈출 수 없었다. 한편 지금 이 시간에도 인간의 존엄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해 분투하는 분들의 활동도 기억했다”고 밝혔다.

다음으로는 2023년 10대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위원회에서 <2023년 올해의 디딤돌·걸림돌 판결>과 판결 선정 이유에 대해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1일부터 지난 10월 31일까지 각급 법원 및 헌법재판소에서 선고된 판결 및 결정을 대상으로 디딤돌·걸림돌 후보 판결이 추천됐으며 선정위원회는 사건의 특징, 기존 판례 견해와의 차이, 사회에 미친 영향, 인권 증진 기여 정도 등을 주요 심사 기준으로 삼고 10대 디딤돌·걸림돌 판결 및 최고의 디딤돌 판결·최악의 걸림돌 판결을 각각 선정했다.

올해 최고의 디딤돌 판결로는 ‘동성 커플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인정 판결’이 선정됐다. 위 판결은 법원이 동성커플의 법적 지위를 인정한 최초의 판결로, 피부양자 제도에서 동성결합 집단을 이성 사실혼 배우자 집단과 다르게 대우하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대우라는 점을 명확하게 설시한 점을 선정 이유로 꼽았다.

올해 최악의 걸림돌 판결로는 ‘공공부문 무기계약직과 공무원 간의 차별이 균등대우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본 대법원 판결’이 선정됐다. 공공부문 ‘무기계약직’ 근로자들의 경우 헌법과 근로기준법 제6조가 차별시정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규정임에도 불구하고 그 규범력이 후퇴하는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근로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 행위를 적극 인정해 무거운 비판을 받을 필요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올 한 해 우리 사회가 관심 있게 지켜본 인권 이슈 2가지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김성순 민변 미디어언론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집중조명1 – 언론의 자유 현황과 과제’에서는 각 언론사와 시민사회단체 소속 발제자들이 현 정부의 언론 탄압을 한 목소리로 규탄했다.

고한석 전국언론노동조합 YTN 지부장은 “정부가 무리하게 준공영방송인 YTN의 사영화(私營化)를 추진하고 있다”며 “권력은 공기와도 같아서 초반에 저항하다가 결국에는 사주(社主)에 봉사하게 된 다른 언론사들의 안타까운 선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싸워나가겠다”고 말했다.

송지연 전국언론노동조합 TBS 지부장은 “TBS지원조례폐지안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시스템, 언론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의 작동, 국민 권익과 행정의 신뢰성 등의 문제가 내재된 부당한 행정처분이며 그만큼 우리 사회에 미칠 부작용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강성원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장은 “올해는 공영방송 KBS의 5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인데 지난 50년간 쌓아온 시스템이 지난 단 3주 만에 무참히 해체되고 붕괴되고 있다”라고 우려하면서 KBS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파괴하려는 시도에 대한 내부의 투쟁을 계속해서 지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호찬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장은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MBC를 무너뜨렸던 사람들이 또다시 공영방송 이사회 등의 요직을 차지하며 그때보다 더 심각한 언론 탄압이 우려된다며, 특히 제보자 보호 및 언론의 감시기능 보장을 위해 법원의 언론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발부가 최대한 신중하게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대양 뉴스타파 기자는 뉴스타파에 대한 검찰의 과도한 압수수색과 언론에의 피의사실 공표 및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독립성 훼손에 관한 문제를 짚으며 정치적 상황을 떠나 언론의 자유가 두텁게 보장돼야 한다는 사회 전반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미용 민변 미디어언론위원회 위원은 TBS지원조례폐지안과 KBS 수신료 분리징수, 방심위원장 등에 대한 일방적 해촉·해임을 통한 방송의 자유 침해와 인터넷 언론의 자유 침해 및 언론사에 대한 강제수사를 통한 보도 봉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 자유의 보장에 심각한 위해가 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채영길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는 어떤 정권이 들어오더라도 언론탄압이 반복되지 않도록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특히 고질적인 언론 정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시민들이 공영방송에 참여하고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언론과 소통의 자유를 보장하는 등 새로운 접근을 모색할 것을 제안했다.

장유식 민변 사법센터 소장의 사회로 진행된 ‘집중조명2–윤석열 정부의 이념전쟁’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과거사, 집회의 자유, 국정원 등 국가 권력기관에 걸쳐 ‘이념’을 이유로 한 광범위한 민주주의 위협에 대해 살펴봤다.

권태윤 민변 과거사청산위원회 위원장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얻어낸 권리를 폄하하고 독립운동사까지 왜곡하면서 외교관계를 강조하고 ‘이념전쟁’을 벌였음에도 한미일 삼각동맹의 실익이 없고 오히려 안보 위협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제라도 정부가 실체 없는 이념전쟁을 중단하고 국민을 보호할 헌법적 의무를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권영국 민변 집회·시위인권침해감시변호단 단장은 2022년 5월 건설노조의 1박 2일 노숙집회 이후 윤석열 정부의 집회시위 탄압이 본격화됐다며 “모든 집회 신고에 시간, 인원 등 제한 조건이 붙고 있으며, 경찰은 펜스를 설치하여 시위대를 가두고 시행령을 개정하여 법원의 결정을 무력화하고 광장에서의 시위를 불허해 시위대가 도로로 나가게 함으로써 시민들의 불편을 야기하는 등 다양하고 일상적으로 집회시위를 제한하고 대중의 집회 참여에 대한 위축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이주희 민변 사법센터 정보권력기관개혁소위원회 간사는 윤석열 정부가 검찰과 국정원 및 감사원과 같은 핵심적인 국가기관을 이용해서 사회 곳곳에서 자신의 정치적 반대세력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고 보면서 나와 생각이 다른 타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공존을 거부하는 혐오의 정치를 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강성현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부교수는 윤석열 정권의 역사전쟁과 외교안보를 주도하고 있는 ‘뉴라이트’에 주목하면서 향후 역사교과서 및 정치와 문화 전반의 사상전과 문화전쟁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랑희 인권운동공간 활 상임활동가(공권력감시대응팀)는 대통령실 앞을 시작으로 주요 도심, 주요 도로에 집회 신고를 하면 금지가 되고, 금지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 및 집행정지 결정이 2년째 반복되고 있다면서 집회의 권리가 판사의 결정에 따라 좌우되는 문제 및 혐오집회의 문제를 지적했다.

장동엽 참여연대 선임간사(국정원감시네트워크)는 “윤석열 정부 들어 국가정보원에 대한 개혁 시계는 완벽히 거꾸로 되돌려졌다”면서 국정원발 압수수색이 이루어지고 및 국내정치 개입 및 대공수사권 폐지에 역행하는 조치들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작년에 이어 윤석열 정부에서의 인권 상황을 두루 살펴보는 ‘현안대담 – 윤석열 정부와 인권 2023’도 진행됐다. 김남근 민변 개혁입법특별위원회 위원장의 사회로 5명의 대담자들이 사회권·기본권을 중심으로 후퇴하고 있는 2023년 현재의 인권 상황을 진단하는 등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줬다.

김태근 민변 집단적 임대차보증금 미반환 피해지원 변호사단 변호사(주택세입자 법률지원센터-세입자114- 운영위원장)는 최근 전국적인 전세사기 피해 현황을 중심으로 전세사기와 세입자를 위한 전세제도 개혁 방안을,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장애단체의 출근길 지하철 타기 투쟁을 중심으로 윤석열 정부의 장애인에 대한 거센 차별과 배제 및 그에 따라 더욱 거세게 저항하는 장애인 운동의 현황을, 연잎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이 교권 침해와 학생인권조례가 대립되는 관계가 아님에도 교권 강화를 이유로 학생인권조례 폐지·개악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각 발언했다.

이어 김선우 4·16연대 사무처장이 내년 세월호참사 10주기를 앞두고 사회적 참사와 재난에 대한 대응이 여전히 미흡하다면서 현 정부 재난 대응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국가, 처벌받지 않는 책임자”라는 두 가지 문장으로 정의했고, 김영희 민변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해양투기 헌법소원 대리인단 단장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의 경과와 위험성,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 및 투기 저지를 위한 시민사회의 대응 현황에 대해 밝혔다.

이번 보고대회 마지막 순서로, 비상하고 엄중한 현 시기에 보편적 민주주의와 인권을 옹호하기 위한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을 결의하는 ‘결의문 – 기록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를! 연대하자, 빼앗긴 가치를 지키기 위한 모든 싸움에!’ 낭독이 진행됐다. 인권을 옹호하기 위한 모든 현장의 시민들과 연대하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지키고 노동의 가치와 민생의 삶터를 지켜갈 것임을 선언하고,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지혜를 모아 인간의 존엄이 지켜지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을 결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