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주’ 오늘 개봉
영화 ‘동주’ 오늘 개봉
  • 임지영 기자
  • 승인 2016.02.1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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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의 ‘서시’나 ‘별 헤는 밤’ 등의 시는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시인이 어떤 삶을 살다가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100여 편의 시와 5편의 산문을 남기고 29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시인의 행적이 이 책 해설에 상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해설을 읽고 시를 다시 읽어 보면 시인이 어떤 마음으로 시를 썼는지, 무엇 때문에 그토록 괴로워했는지를 고스란히 알 수 있다.

1917년 만주의 명동촌에서 태어난 윤동주는 외삼촌인 김약연 선생이 설립한 학교에서 조선어와 조선 역사를 배우며 자랐다. 훗날 함께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옥사한 고종사촌 송몽규와 소학교 4학년 무렵부터 등사판으로 ‘새 명동’이라는 문예지를 편집, 간행하며 자신들이 쓴 동시와 동요를 발표할 정도로 문학에 관심이 깊었다.

평양에 있는 숭실 중학교 때 처음 시작을 발표하였고 1939년 연희 전문 2학년 재학 중 ‘소년’ 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연희 전문을 졸업한 뒤 일본 도시샤 대학 유학 중이던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9세의 나이에 옥중에서 요절하였다. 사인은 일본의 소금물 생체실험으로 인한 사망인 것으로 사료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사후에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으니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책인지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 후반 양심적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는 윤동주, 그의 초기 시는 맑은 동심을 표출한 시도 있지만 일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비판과 자아성찰 등을 주요 소재로 하였다.

그 무렵 일제의 조선민족 말살정책은 절정에 달하였고 넝마처럼 떠돌며 살아야 했던 우리 민족의 비극적 역사는 그의 애국적 열정을 더욱더 아프게 하였다. 그 암흑기에 시인 윤동주는 초연히 살 대신 뼈를 택한 저항의 시를 썼던 것이다. 이것이 윤동주의 시 세계가 다른 시인들과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점이다.

그는 선구자로서 또는 예언자로서의 시인이었다. 29세의 짧은 생애를 하늘과 바람과 별을 노래하며 슬픈 역사 앞에 스스로 십자가를 멘 이 땅의 시인이며 애국 청년이다. 한 많은 짧은 생애에 그가 보여 준 한 점 부끄럼 없는 삶과 시는 영원히 후대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