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편의점, 재벌과 초국적자본의 문어발 빨판에서 서민대중의 생산 플랫폼으로 바뀌어야
사설 편의점, 재벌과 초국적자본의 문어발 빨판에서 서민대중의 생산 플랫폼으로 바뀌어야
  • 연합매일신문
  • 승인 2019.06.0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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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에 숨어 자본주의 욕망만을 채워주는 편의점은 배제와 소외의 공간
지역주민들의 상생, 연대, 참여로 신토불이 지역자치 편의점 네트워크 조직해야
지난 5월 30일 오후 1시25분쯤 부산 진구 범천동의 내리막길을 주행하던 스파크가 편의점으로 돌진하는 사고가 발생해 편의점 내부가 무너져 있다.(부산지방경찰청 제공)
지난 5월 30일 오후 1시25분쯤 부산 진구 범천동의 내리막길을 주행하던 스파크가 편의점으로 돌진하는 사고가 발생해 편의점 내부가 무너져 있다.(부산지방경찰청 제공)

 

신자유주의 시대 골목상권을 집어 삼키는 재벌자본의 블랙홀

바야흐로 ‘편의점’ 시대라고들 한다. 편의점은 “없는 것 없이 다 팔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으며, 어디에든 다 있다”. 편의점은 영세한 점포들의 다양한 구색상품들을 대체하고 있다. 그야말로 도심 골목상권의 구멍가게에서부터 벽지산골의 동구앞 버스 정류장까지 점령한 것이다. 감히 편의점 전성시대라고 할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거래 정보공개서에 의하면, 4대 메이저 브랜드 업체와 군소 업체를 포함하여 전국에 걸쳐 운영 중인 편의점은 2017년 말 기준 4만 1,800개를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편의점 한 점포 당 인구 1,239명이 해당되는 셈이다. CU편의점을 기준으로, 평균 매장면적은 약 73m²(22평)이며, 취급하는 상품 종류는 담배를 포함하여 대략 1,700~2,000여 개에 해당된다. 상대적으로 가장 종류가 적은 간편식사류만 하더라도 200여종에 달한다.

이렇게 편의점은 온갖 등속의 상품을 편의적으로 판매하면서도, 익명의 대중에게 편의만을 제공할 뿐 자기 자신의 ‘얼굴’이 없다. 마을에 매장이 들어선지 몇 년이 흘러도 점장 얼굴 한번 알아보기 힘들다. 때때로, 알바들과는 잠깐 얼굴을 익힐만도 하지만, 철철이 얼굴 바꿈을 하는 알바들에게 사사로운 말 한마디 나누기 힘들다. 그야말로 신자유주의 시대 대량소비, 불안정 단기고용, 스피드 시대가 낳은 도시의 비정한 자화상이다.

자본뒤에 숨어 욕망을 채워주는 편리한 익명의 공간

편의점은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 오만가지를 모두 상품으로 생산하여 고객을 유혹하고 있다. 편의점은 모든 것을 담고 있으며, 모든 것을 대체하고 있으며, 모든 비밀조차 싸안은 채, 도시의 그늘 뒤에 숨어 익명이 갈망하는 온갖 잡동사니 욕망을 채워주고 있다.

편의점 공간에서 고객은 익명으로 존재할 때 그의 욕망은 더욱 살아 펄떡인다. 편의점에서는 개인은 매몰되고 인간은 사라진다. 사라진 자리에는 오로지 자본과 결제기능만이 활개친다. 개인은 철저히 고객이라는 이름으로 익명성 뒤에 남아 자신에게 필요한 품목만을 가격에 견주며 결제서비스를 요구할 뿐이다. 자동화 POS시스템에 QR코드를 찍으면 거래는 기계적으로 완벽하게 마무리 된다. 알바는 이러한 결정과정이 완성되면 자신이 할 바를 다한 것이다. 자본에 임시고용된 알바는 고객에게 구태여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고객을 개인으로 보고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자신의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무가치한 감정노동만 더 할 뿐이다. 고객은 익명으로 존재하는 미생(未生)이자 서비스만 요구하는 대상일 뿐이다. 여기에, 애초부터 사회적 ‘관계’(關係, Relation)는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설혹 ‘관계’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차별과 격차로 이루어진 배제와 소외의 관계일 뿐이다.

영세민의 생계형 노점까지 노린다.

편의점은 골목상권을 대체해가며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빛을 발한다. 깔끔하고, 편리하고, 정리정돈 잘되어 있고, 친절한 알바가 인사해주는 ‘편의’가 돋보이는 욕구의 거래장소이다. 고객의 지갑을 털기 위해 점주를 앞세워 소상공인으로 가장한 채 GS25, CU, 미니스톱, 세븐일레븐, 이마트24 편의점은 재벌 그룹(GS리테일, 중앙일보 계열사 보광그룹, 신세계)의 행동대장 노릇을 하거나, 미국 자본의 낯을 빌려오거나(대상그룹), 일본 그룹(롯데)에 얹힌 채 골목을 지키고 있다.

편의점은 동네 구멍가게를 대체한 만물잡화 소매점이다. 편의점은 이제 품목도 다양해지고 있다. 편의점에서 고객은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는 장점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감내하며 단품위주로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행태를 보여준다. 그러나, 최근의 상품구색은 골목상권을 다 흡입할 듯한 블랙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편의점은 삼각김밥, 용기라면 등에서 그치지 않고, 동네 자영업자의 고유 품목을 넘나들며 욕망의 군침을 삼키고 있다. 추위에 벌벌떨며 겨울 한철 벌어 먹는 군밤, 군고구마 이동상인들의 매출까지 진공청소기 마냥 빨아 들이고자 편의점은 가픈 숨을 헐떡거린다. 거리의 노점상은 취약계층이 마지막으로 고투하는 삶의 최후 결전의 전쟁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벌과 자본은 이것 마저도 ‘남의 떡’으로 용납하지 않는다.

당신은 점심허기를 무엇으로 채우는가? 편의점에 가면 샌드위치, 핫바, 컵라면, 삼각김밥, 오뎅이 종류별로 가격대별로 넘쳐난다. 요즘 들어서는 도시락, 치킨, 핫도그, 고구마, 도너츠 까지 대기하고 있다. 여기서 무엇을 더 원할 수 있을까? 이것도 부족하면, 조각 케익, 빙수, 티라미스, 새우스틱은 어떤가? 집에 돌아갈때는 반드시 간이 약품, 세척 과일채소, 포장 육고기까지 챙겨보기 바란다. 더군다나, 문구, ATM기, 복사·팩스, 복권에 택배까지 실로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동네 골목상권을 편의적으로 다 잡아먹고 있다. 편의점은 공룡이자 블랙홀이자 진공청소기인 셈이다. 편의점은 약육강식의 정글 자본주의를 드러내는 한 편의 극본없는 드라마이고, 편의점은 화려한 네온사인 뒤에 일인독식의 승자와 남루한 패자를 극명하게 대비시켜 주는 카지노 자본주의의 실체이다.

이 자본주의의 비열한 거리에서 진정한 승자는 누구일까? 익명의 고객은 편의점 알바의 서비스를 요구하면서, 자신의 푼돈을 던져 재벌과 대기업에게 욕망을 구걸하는 가련한 서민일 뿐이다. 익명의 소비자는 깔끔한 편의점을 방문하면서 주변 골목상권의 초라한 점포를 외면한 채, 자신은 저 들과는 다를거라는 허위의식에 가득 찬 일시적 탈옥자들일 뿐이다. 점주는 편의점 본사의 이익을 지켜주는 착실한 점원일 뿐. 본사는 점원이 말 잘 들으면 폐업도 잘 시켜준다. 가끔 성과가 좋으면 편의점을 하나 더 차릴 수 있다. 재벌의 문어발에 기대어 편의점 점포의 문어발 빨판까지 더해 골목상권을 잠식해 들어간다. 점주는 재벌본사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환상속에서 자신을 재벌그룹의 소사장쯤으로 착각한다. 고객이든, 알바든, 점주든 이들은 왜곡된 자본주의의 산물이자 피해자들이다. 이들은 배제되고 소외된 자신의 자아를 욕망에 반영(反影)시켜 반사된 환영(幻影)을 바라보며 자기의 주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다.

사라져 가는 골목상권의 이웃들

편의점 본사인 이들 공룡에게는 경쟁자 조차도 없다. 서로간에 맺은 ‘100미터 룰’ 신사협정은 영업현장에서는 한가한 말장난일 뿐이다. 포화된 편의점 시장은 건너편 편의점만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고, 동네의 김씨 아저씨 채소가게, 훈이네 문방구, 전주 보리밥집, 또와 분식, 베베 도너츠, 서울 복사집을 시나브로 몰아내고 있다. 동네 문구점이 인터넷 쇼핑몰과 다이소의 열풍속에 하나 둘 문을 닫았듯이, 곧 있으면 이제 “편의점 때문에 못살겠다”는 비명조차 들을수가 없어질 것이다. 왜 일까? 이땅의 민초들은 그 비명조차 지를수 있는 능력이 없거나, 자신들이 왜 매출이 떨어지는지 원인조차 헤아릴 수 없거나, 하루하루가 생계지옥의 끝에 매달린 이땅의 ‘마지막’ 취약계층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리 이제 다 망해가요, 좀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라고 하지만, 아마도 1년여가 지나면 이런 비명 조차 들을수 없을런지 모른다.

60세를 훌쩍 넘으신 베이비 붐 세대 어르신들은 이제 점포문을 닫고, 자식세대의 부양을 바라지도 못하고, 기초연금 수급자로, 취약계층으로 전락한 채 폐지를 줍거나 정부 복지나 바라보는 처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경쟁사회에서 앞만보고 달리다가 어느날 내팽겨쳐진 베이비 부머들은 갑자기 닥친 실직이란 세상의 변화를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세상은 쏜살같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18세기 산업혁명이 현재의 노동착취와 자본의 비극을 정당화했다면, 오늘날 편의점은 인간의 소외와 경쟁의 과잉을 배가시키고, 모든 자본과 상품을 집어 삼키는 블랙홀로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자본이 만들어 낸 편의점을 지역주민의 신토불이 협동조합 편의점 네트워크로 전환해야

세상은 진화한다. 편의점 업계도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의 과정을 맞닺뜨리고 있다. 공진화란 다른 개체의 진화의 과정에 따라 전(全) 생태계가 상호 조응하며 서서이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세계는 자본주의의 틀을 벗어날 듯 하면서 소유에서 공유와 체험으로 변화되고 있다. 과거의 본원축적, 개발독재는 이제 추억이 되고 있다. 세계경제는 모바일의 범람속에서 구독경제(배달경제), 접속경제(링크경제), 관심경제(클릭경제), 플랫폼 경제로 이행하고 있다.

이제 편의점을 포박한 재벌과 초국적 자본의 그물망을 해체하려는 첫삽을 떠야 한다. 자본이 만들어 낸 편의점 카르텔을 깨고 지역주민의 손으로 협동조합 네트워크 운동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역의 원자재를 사용하여 로컬푸드를 생산하고, 지역의 상공인·자영업자들은 지역주민을 고용하고, 지역에서 만들어 낸 농·수산·공산품을 지역편의점에 공급하고, 지역주민이 신토불이 편의점 제품을 소비하고, 지역민간 상호신뢰가 상승하는 상생-순환-연대의 관계를 조성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토불이 지역자치 편의점 네트워크이다.

지역내에서 지역사회 주민네트워크를 제도화하고 참여자치, 공정분배, 균형성장, 경제정의, 주민연대를 고취하는 노동자-시민 연대 네트워크 추구를 위해 과학적인 실천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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