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를 응축한 시집 ‘천 개의 눈물’
‘위안부’ 문제를 응축한 시집 ‘천 개의 눈물’
  • 임지영 기자
  • 승인 2015.12.1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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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포항문학》에 <사루비아> 외 2편 발표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뒤 꾸준히 창작에 매진해오다가 2003년에는 계간 시전문지 《심상》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시단에 확고한 자리매김을 한 권순자 시인이 이번에 일곱 번째 시집으로 《천 개의 눈물》을 출간했다.

지난 11월에 세상에 나온 이 시집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주제(소재)로 쓴 한(韓)·영(英)·일(日) 대역 시들로 구성된 점이 큰 특징이다. 번역에도 꽤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지며, 권순자 시인의 장고 끝에 영문 번역은 지인( 知人)인 ‘앤 노드퀴스트’ 씨에게, 일어 번역은 한성례 씨(현 세종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에게 각각 맡겨졌다.

권순자 시인은 책머리글 <시인의 말>에, 천 개의 눈물에서 시집은 제2차 세계대전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연행되거나 일본군 부대로 납치되어 일본군의 성노예로 고통스런 삶을 살았던 한국의 어린 소녀들에 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한,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는 뜻으로 같이 한다.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눈물 어린 증언을 직접 듣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의 양심으로서 실록을 겸한 시집을 통해 그분들의 상처를 위무코자 했다며 출간의 배경을 밝히면서, 일본정부의 진심어린 참회의 사과와 합당한 해결을 바란다는 심정을 덧붙였다.

고은 시인은 추천사를 적으면서, 어찌 이런 시가 없을 수 있겠는가. 어찌 이런 처절한 민족현실의 표상이기도 한 타칭 ‘위안부’ 사태를 회피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결코 지난 시대의 모독만으로 묻어둘 수 없는 가장 강한 당대적 과제이다. 뜻있는 시인이 있어 바로 이 엄중한 사실을 시로 확인해낸 것이 이 시집일 것이다. 굳이 과장할 까닭도 없다. 굳이 장식할 필요도 없다. 오로지 머리로 남은 진실들을 정직하게 들추어내고 있다. 어제의 민족 가해와 어제의 인권 폭거의 야만이 오늘의 형상의지에 ‘천개의 눈물’시집에 착실하게 담겨있다라고 시집을 평가하면서, 수고했다고 시인을 격려했다.

시집에 담긴 작품은 30편으로, 전 작품이 영어와 일어로 대역이 되어 있어 국제적으로도 파급이 크고 내용적으로도 큰 공감대를 형성할 것으로 것으로 진단된다.

<기도>란 시 한 편을 읽어본다.

신이여
이 어둠의 세계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저 푸른 하늘 날아서
고향으로 가게 해 주십시오

고통으로 타오르는 몸을 식혀주시고
슬픔으로 꺼져가는 몸을 건져 주십시오

연약한 살결이 터져서
정신이 자주 어둠 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가슴이 갈라지고
억장이 무너지는 시간이 이어집니다

제 몸과 정신을
끝없는 폭력에서 구해주시고
바스러져가는 정신을
깨어있게 해 주십시오

전신에 피멍이 들어도
상처투성이로 얼룩 져도
살아있게 힘을 주십시오

살아서 증언하게 해 주십시오
지금의 모든 신음을 언어로
세상에 알리도록
견디는 힘을 주십시오

앙상한 뼈로 남더라고
증언할 힘을 주십시오

망각의 땅에 가더라도 잊지 않고
증언하는 입술을 주십시오